흔적에 치성을

독립운동가 100인 웹툰 추진단 <2019년 아트뷰 기고>

by 정한별
야반삼경 잠이 드는가 하는 순간에 사분사분 흰 물체가 어른거린다. 할머니께서 잠든 아이들이 깰까, 조용히 몸을 움직이고 계셨다. 두 손에는 하얀 사발 하나를 고이 드셨는데, 마당으로 나가자 큰 달이 그릇에 일렁이며 반짝이는 것이, 그릇에 담겼던 것은 맑은 물이 분명하다. 슬그머니 이것이 무슨 광경인지 궁금해진 어린 나는 할머니를 몰래 따라나섰다. 마당 장독대에서 가장 너른 항아리 뚜껑 찾아 그곳에 흰 사발을 올리신 할머니는 호흡을 고르시고 이어 거듭거듭 비손이를 하신다. 말이 없는 가운데, 곁에서 지켜보는 나의 가슴 틈을 벌리고 점차 따스한 기운이 스며들어 왔다. 훗날이 되어서야 예부터 이것을 ‘치성(致誠)’이라 일컫는 것을 알았다. 나라와 사회, 집안의 무고와 가족들의 안녕을 빌고 기원하는 정성의 행위, 이 치성이 눈으로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것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짐작하고 있다, 개인이 똑 홀로 떨어져 세상 위에 혼자 서 있는 듯 외로움과 씨름하지만 결국 ‘나’라는 존재는 먼 근원과 주변을 딛고, 그것으로부터 떼려야 뗄 수 없는 ‘이어짐’으로 붙은 한 덩어리이자 서로 어떠한 관계든 맺고 더불어 존재하는 것이라는 것을.



임시정부가 수립되고, 3・1 운동이 일어나고, 드디어 광복 100년이 되는 해가 돌아왔다. 성남시는 이 ‘치성’이 가서 닿아야 할 곳을 찾아 나섰다. 그들이 바로 독립운동가들이었고, 이 독립운동가들의 혼魂과 정신精神을 귀히 모셔와 대중에 가깝게 모실 만화 작가 33인과 이를 웹툰으로 만들어 널리 알리는 일을 추진하는 실무진이 꾸려졌다. 우선 이분들의 격렬했던 전장戰場과 소리 없이 묻히신 순국지殉國地, 남아 있는 초라한 비석이라도 찾아 흔적을 고스란히 담아 작품에 녹여내는 시간들이 필요했다. 먼저 대표적인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가 있었던 중국의 동북, 만주 지역을 중심으로 한 답사 길과 임시 정부를 중심으로 한 관내 지역을 찾아 떠나가 대장정의 길을 돌아왔다. 그 길이 삼만 리(약 10,000킬로미터)가 되었다. 4월 초임에도 불구하고 한겨울 폭설이 내린 이도백하二道百河와 추위가 살을 파고드는 광활한 만주 벌판, 버스로 열 시간, 네 시간, 여섯 시간씩 넘게 달려가 마주 대한 방천과 투먼, 흑룡강성, 목단강, 해림, 계서, 밀산, 하얼빈역의 다 허물어져가는 비석들과 간신히 복원한 옛 터들, 그리고 상하이와 난징, 항저우와 충칭, 광저우에 도달했을 때에는 이미 땀이 줄줄 흐르는 여름이었다.

이동하는 내내 감출 수 없는 감정들이 복받쳐 올라 때로는 분개하고, 때로는 속울음을 울며 아무도 찾지 않았던 초라한 흔적들을 위로하며 마음을 두고 떠나왔다. 거기에 역사와 인문, 웹툰 전문 자문위원이신 정현기, 김명섭, 정철훈, 윤종준, 홍영기, 최정규, 이재식 선생의 상세한 설명과 해설에 마치 역사의 한 장면 속으로 들어온 듯, 당시의 감정으로 도시와 도시를, 시간과 시간을 겅중 뛰어넘으며 다니고 있구나 하는 마음이 일어났다.


마지막 답사지, 광저우廣州의 기의열사능원廣州起義烈士陵園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면 ‘중조인민혈의정中朝人民血宜亭’이라고 쓰인 정자 앞에 당도한다. 큰 비석의 앞 얼굴에는 광저우 봉기의 부사령관인 예찌엔잉葉劍英이 중국정부수립기념 국경일인 1964년 10월 1일에 직접 쓴 글이 새겨져 있었다. ‘조선과 중국 양국 인민이 전투로 맺은 우의는 길이길이 빛나리라’라고 적혀 있고, 뒷면에는 ‘1927년 12월 11일 광주 기의 봉기에 참여한 조선 청년들은 150여 명으로, 최후의 사하 전투에서 진지를 사수하다가 대부분 희생되었다. 이 피로 맺어진 우의는 만고에 빛날 것이다’라는 비문이 적혀 있었다. 준비해 간 술과 헌화를 하시던 김명섭 자문위원께서 “미처 준비하지 못해 고국의 술이 아닌 중국의 술로 마음을 올리게 되어 심히 부끄럽습니다”라고 말씀하시는 순간 목이 메셨다. 답사팀 모두가 그 고스란한 마음을 느끼고서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광저우에 위치한 기의열사능원을 찾은 웹툰 프로젝트 답사팀
그들이 바친 생으로 오늘을 살아가다


독립운동가들이 자신의 생을 압축하여 미련 없이 던질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무엇 때문에 길고 안락한 생을 버리고 이리 멀고 험난한 길을 걸었을까? 그 최후는 왜 그렇게 비통하고 장렬했으며, 그리고 또 그렇게 산화하여서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쓸쓸한 곳에서 풍화되어 사그라지고 있을까? 수많은 질문들이 가지를 치지만 늘 대답은 하나로 들려왔다.

“너희, 남겨진 내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켜내야 했기에.”


만화漫畫라는 단어를 찾아 먼 중국의 설문해자說文解字를 찾아보니, 이 만漫자는 물 비칠 만자이고, 의미는 가로막힌 둑이 터지면서 물이 쏟아져 나오면서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모습이나, 수면에 비치는 햇빛으로 ‘물결의 반짝임’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결국 만화란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생명의 빛을 담은 그림 이리라. 이 대장정의 길 위에서 우리가 마주한, 이제는 찾는 이도 많지 않은 초라한 흔적들에 만화가들이 다녀갔다. 만화가들이 다녀갔다는 말은 무슨 말인가? 단 한 장의 그림으로도 능히 천 마디 말보다 많은 뜻을 전하는 이들이 아닌가?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시간을 달리는 버스에서도 맨 앞자리에 앉아 곳곳을 담아내시던 허영만 선생, 꼼꼼하게 사진을 찍으며 차곡차곡 이지러진 흔적들을 각인하시던 김진 선생, 후배들 다독거리며 그 먼 여정을 꼿꼿하게 지켜주신 김광성, 차성진 선생, 커다란 키로 유적지를 지날 때마다 때론 분노하고 때론 슬퍼하던 오자유 작가, 끝내 울컥 눈물을 보이신 김금숙, 류량, 최인선 작가, 조용히 뒤에서 독려하고 자신의 앎을 나누던 전세훈, 박건웅 작가, 아이처럼 맑은 기운으로 위아래로 사랑받는 이루다, 이별님, 양광민 작가, 조용히 따르며 하늘을 찡긋 바라보던 이민진, 이화신 작가, 골똘하게 써 내려간 수첩을 든 김성희, 유대수 작가, 묵묵한 조명원, 김재연 작가, 숙제라며 앉는 곳마다 스케치를 하던 천명기, 유대수 작가, 유쾌한 모습으로 동료를 살피던 박명운, 이상훈, 정기영 작가, 재치와 깊이가 남다른 이정헌, 송동근, 김연승 작가, 엉뚱하고 순박한 정용연 작가, 우박만 내리면 생각날 것 같은 김현민 작가, 말없는 그림자처럼 작가들을 이끌고 쉼 없는 열정으로 북돋워주던 이도헌, 김동영, 김진영, 염기남 실무단, 그리고 오롯한 시선으로 촬영에 임했던 조은성, 김준호 영상팀. 이들 사람 된 자들이 눈으로 가슴에 담은, 비록 초라해진 흔적들은 작가들의 끊임없이 이어진 치성으로 뼈와 살이 붙어 되살아나 우리와 함께 호흡하며 존재할 것이다.


흔적이라는 말, 상처를 말하고, 치성이라는 말, 그 상처를 어루만지는 마음씨이다. 우리 아무렇지도 않게 디디고 선 이곳, 단 한 평도 빠짐없이 저 피와 상처들에서 받은 토대이다.

흔적에 치성을.

-끝-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인仁과 부인否認, 不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