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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으로 아뢰오 #1

2015

by 정한별


염라대왕 근엄히 묻기를
너는 누구이냐?

비움이었으나 잔뜩 욕심 끌어들여
나를 이룬 즉 자랑이 없는

변명을 시작하자 방망이가 주둥이를 후려치며
거울 한 장 와장창 깨지는 소리
한 평생 쏟아 내었던 모든 소리가 쏟아져 내린다
말을 쓴 자의 바람이 산산이 닫아질 때까지
주둥이가 문드러지게 얻어맞고 있었다

깨진 입으로 항문이 빨려 들어갈 만큼
내장을 하염없이 쏟아내자
이번엔 사정없이 항문을 내려쳐
채, 방귀 한 번 뀌지 못하고 똥구멍 문드러져
또 한 거울이 와장창 부서졌다

재차
너는 누구이냐 묻는데
무엇으로 대답할까
불안한 눈알로 짙은 애원 뒤룩뒤룩 굴리지만
순간
눈알에 보아 온 모든 것들 쏟아져 맺혀
뒤통수가 하얗게 빨려 들어가 버린다

눈알을 짓이겨 더는 보지도
흘리지도 못하게 하였고
거울 한 장 또 깨어진다

입과 항문 깨지고
눈도 없이 버둥거리며
귀를 쫑긋거리자

소리가
들은 모든 소리가
앰프 달은 듯 증폭되어 왕왕
귓구멍으로 흘러나온다
달팽이마저 슬슬 온전히 다 기어 나올 무렵
그것을 집어 쏙 내팽개치고 방망이로 찍어
와그작거리며 짓찧어 한 장의 거울을 또 깨버렸다

두더지같이 코를 실룩거리며 도리질을 하자
맡았던 무수한 향
남김없이 타오르며 어칠거린다
방망이는 이 무수한 연기緣起마저 묵사발을 만들어
거울 하나를 더 없앴다

눈도 없고 귀도 없고 냄새도 없고
죌 똥구멍도 없어 정관을 타고
오줌 섞인 서러운 눈물이 질질 흘러나온다
아들 물어 죽인 뱀처럼
거울을 늘씬하게 두들기니
이 자지 축 늘어져 곧 멸망해 버린다

아홉 구멍 쏟아지고
아홉 거울 깨어지고
빈 굼벵이 흐느적거리며
글자 쓴다

염라대왕께 온몸으로 아뢰오
뭐라 꿈틀거리자 남은 몸이 터져
흔적도 없이 날아가 버렸다

아홉 거울 속 염라대왕 동시에 중얼거리며
사랑하지 말라
마음먹지 말라
너 다시는 태어날 꿈도 꾸지 말라며
한 생으로 소원하던 답을 대신하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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