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어머니 우리 곧 만나요. 저도 곧 갑니다" 하시며, 한기호(韓基昊) 큰아버지 축문은 이랬다.
"산에 마련한 묘지가 빠른 세상의 변화로 발길을 자주 하기 어려워졌습니다. 너무나 빠른 세상의 변화에 발맞추기 힘드오나, 최대한 뿌리를 잊지 않고 찾아주기를 바라 이렇게 증조, 조부모, 부모님을 한 곳으로 모십니다. 한 번이라도 더, 남은 후손들이 찾아와 만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이종사촌 동생 아버지의 답사는 이랬다.
"시인 이상의 오감도 두 번째 시는 이렇습니다. '나의 아버지가나의겨테서조을적에나는나의 아버지가되고또나는나의아버지의아버지가되고그런데도나의아버지는나의아버지대로나의아버지인데어쩌자고나는자꾸나의아버지의아버지의아버지의……아버지가되니나는웨나의아버지를껑충뛰어넘어야하는지나는웨드듸어나와나의아버지와나의아버지의아버지와나의아버지의아버지의아버지노릇을한꺼번에하면서살아야하는것이냐'
이 띄어쓰기도 없는 시를 가지고 어떤 사람은 말장난이다, 기성세대나 권위를 벗어나려는 욕구다, 잘못 뜻풀이한 것이 있습니다. 한 세대를 30년만 쳐도 여기 잠드신 3대는 100년입니다. 그리고 여기 아들 손자, 살아있는 3대가 또 100년입니다. 이렇게 보란 듯 피로 이은 끈이 이미 200년입니다. 단군이 누구냐고, 찾기 어렵다고 합니다.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100번을 부르면 3,000년, 천 번을 부르면 30,000년입니다.
제자들이 '나는 과연 무엇인가요?', '나는 어디서 왔나요?'묻는 질문이 늘 두렵습니다. 가만히 아버지와 어머니, 또 아버지와 어머니를 불러보거나 그리워하지 않는 '나'는 '나일 수 없다'라고 대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