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밀

2013.11

by 정한별
성철 큰스님 시찬행자 원조(圓照) 법명 주셨다가 이름 매인 상좌들이 비토하여 삼밀(三密)로 법명 바뀐 스님 계셨지, 서울 성북구 정릉동 삼정사三精寺에는 그렇게 항상 웃는 상像이 있었지.

어느 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이들 서넛이 동네 슈퍼에서 우유병이 든 박스를 통째로 훔쳐 달아나는 것을 붙잡았습니다. 아이들에게 어디에 사냐 물었더니 "저, 삼정사에 살아요”합니다.


아이들을 인도하며 알았습니다. 부모에게 버려진 아이들, 홀로 남겨진 아이들을 데려다 키우시는 스님이 계시다는 것을. 생로병사를 아시자 하시는 님이 어찌 환과독고(鰥寡獨孤) 불쌍不雙, 하늘에 닿은 슬픔을 모른 체하시리이까? 수긍하며 돌아서 오는 뒷덜미에


‘이름이 머여?” 물으십니다.

“아, 저는 요 아래 사는 정한별이라고 합니다.”

”한별이, 절에 놀러 와!”

“네, 그러합지요!”


시간이 오래 지나가고 길음시장 맞은편 ‘김철수 피부과’에 뾰루지를 치료하러 갔었습니다. 거기서 찢어진 고무신을 꼬물거리시며 수줍고 부끄러워하는 시선을 만났습니다.


“아 삼밀 스님, 여긴 웬일이세요?”

“아, 공부하는 학생이 병원에 호사를 한다고……”

얇고 찢어진 고무신을 기워 신고 하도 많이 걸어 다니시느라 발에 물집이 생기고 고름이 차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몇 년이 흘러 정릉 4동으로, 청수장까지 오는 버스를 종로에서 탔습니다.

그 안에서 다시 삼밀 스님을 만났습니다.

차 안에서 둘이 주거니 받거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잘 나누었습니다.

내리자마자 집도 절도 얼마 차이도 나지 않는 가까운, 지척인데 돌연 저를 툭 치시며


“한별이 백천만겁난조우(百千萬劫難遭遇)여!”하시면서 휙 돌아서서 혼자 앞질러 가십니다.

속으로 전 “뭐지? 유난히 왜 저러실까?”하며 의아해 한참을 멍하니 섰다가 집으로 향하였습니다.

그런데 다시 제 속마음을 훤히 들여다 보시기라도 하는 듯 갑자기 뒤로 돌아 다시 성큼 다가오시더니 한마디 더 하십니다.


“인생은 한 편의 연기이니라!”


군대 영장을 받아두고 입영 전까지 식구들에게 괜한 말은 미리 하지 않고 당일 새벽 편지를 써두고, 머리를 밀고, 동트기도 전에 모올래 대문을 열고 집 밖으로 나섰습니다.


갑자기 제 옆으로 택시 한 대가 섭니다.

“어, 여기 타쇼!”

저도 모르게 그냥 올라타버렸습니다.

“어디까지 가우?”

“군대까지 갑니다.”

“하핫, 입대하는 모양이구만, 그래 내가 술이 덜 깨어서 요 아래 버스 정류장까지는 데려다 드리리다.”


가만히 보니 아저씨의 눈은 더는 붉을 수 도 없게 빨갛게 충혈되어있었고, 술냄새는 진동, 게다가 진한 향내마저 코를 찌릅니다.


“아, 혹시 저그, 삼정사에 삼밀 스님을 혹시 알우?”

‘알지요, 매일 웃는 얼굴이시라 제가 스마일스님이라 부르곤 했답니다.”


“아, 그래요, 나는 고아로 버려졌다가 그 스님이 날 데려다 키웠다오.”


“그런데, 그제 그분이 입적을 했다지 뭐요, 내 그분 극락왕생 하신 것은 잘 알겠는데, 아, 아버지 같아서, 사람 정을 못 끊어 이리 와 밤새 울다 가는 거요.”


울먹이며 더는 말을 잊지 못하십니다.

그러다가 다시 말문을 엽니다.


”그, 근데 혹시 근래에 스님을 만나거나 뭐라 전해 들으신 말씀이 있소? 내 아무리 생각해도 인사도 없이 보내드리기가 너무 마음이 아프오.”


곰곰이 생각하다가

‘아, 생각납니다, 일주일 전쯤 인생은 한 편의 연기이니라, 하셨습니다.”


“아아, 그래서 자네를 태우고 싶었구먼, 아아 자네를 태우게 하신 게야!”


군생활은 거지 같았습니다.

그래도 줄곧 “그래 만난 것도 백천만겁난조우니라”

그래도 줄곧 “인생은 한 편의 연기이니라”를 되뇌며 군바리 연기에 혼신을 다하였습니다.


제대 이 년 후, 그 두 가지 유언은 아직도 정수리를 태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적지 그 의미를 헤맵니다.


불가佛家의 연기緣起도 연기 이거니와, 마음이 매일 지글지글 불타佛陀는 연기煙氣가 피어올라도, 끊임이 없이 착한 말과 선한 행동, 예쁜 선택과 바른생활을 해나간다면, 혹시 내가 죽는 연기, 하관을 할 적에는 나에게 아무도 악인이라고 하지는 않겠지.


이런 내 대본을 쥐고 그 연기演技를 끝까지 고수하고 싶습니다.

삼밀 스님! 곰곰이 생각하니 웃지 않는 모습을 뵌 적이 없습니다. 웃는 얼굴로 남아주신 연기, 제겐 변함이 없는 한 빛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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