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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품는 도깨비(道開飛)

씨름

by 정한별

마을 뒷동산 소사나무 수호목에서 덜그럭 소리

나무 뒤로 씩 웃는 그림자 숨어 나를 본다


데데 굴 굴 데굴데굴

뒤뚱거리며 발 앞으로 굴러 내린

머리통만 한

알 하나


저게 울 할아버지랑 씨름을 했다는 빗자루여?


알과 나무 뒤 그림자를 번갈아보고 있자니

그림자 입 벌리며 소리 없이 말한다


품어!


할배는 사흘 밤낮 씨름하고 나는

알을 품었더라


삼칠일이 채 되지 못해 알이

갈라지며 피시식 연기(緣起)가 났는데


제 아무리(我無理) 길을 열어 나는

비상한 습관을 지녔더래도 이 가을

알에서 깬 허무를 이길 바가 없더라


이 아이 이름 고상하게 인위라 짓고

쏙 빠진 눈으로 젖을 물렸다


할아버지 사흘 밤낮 씨름만큼, 아니

더 길다고 착각하는 짧은 일생


이런 샅바를 품에 안고 졸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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