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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남과 의식주 그리고 요람

20131123

by 정한별


의식주는 사람 생활의 기본이 되는 옷과 음식과 집을 말한다.

한국에서는 아기가 태어나면 배냇저고리와 포대기, 따듯한 온돌과 엄마의 모유가 일체의 의식주가 된다. 특히 주(住)에 해당하는 가구 및 물품은 여타 다른 국가와는 다르게 그다지 크게 활용된 것이 없다. 온돌 문화의 큰 특색이라 할 수 있다.

채롱형식의 바구니 또는 간단한 상자에 아이를 넣으면 어른들은 왜 아이를 가두어 두는가 질책을 하였으니. 예부터 이렇게 구속과 포박을 기피하는 정신이 강한 까닭으로 여겨진다.

배냇저고리, 모유와 같이 그 중요성이 오래도록 회자되는 주제는 없다. 인체에 무해한 재질의 저고리와 아기에게 가장 유익한 모유의 중요성을 여러 차례 흔들어 편리한 이기적인 문화로 바꾸어 놓으려는 거대공룡 유제품생산회사들과 섬유회사들의 갖은 책략에도 불구하고 그 처음의 옷과 음식은 끊임없이 옛 재료를 사랑하고 원래의 고유한 것을 지키는 정신으로 본능에 가깝게 보호되고 지켜졌다. 나아가서는 포대기문화가 이미 외국으로부터 새삼 유행하고 그 엄마와의 유대감형성과 사랑, 연결의 의미로 되려 해외에서 해외로 발 빠르게 전파되고 있다.

배 안에 있을 때부터 가지고 있던 저고리라는 의미의 배냇저고리를 만들 때에는 장수한 어른의 옷을 재창조하여 옷을 만들기도 하고, 보통 명주나 면으로 만들었다. 후에 장성하여 혼인을 할 때에는 함에 넣어 보내기도 하고. 시험이나 송사가 있을 때에는 몸에 지니기도 하였다고 하니 이 ‘처음’의 의미가 매우 깊고 중요하게 여겨졌다는 것은 깊은 까닭이 있을 것이다.

도시가 가속화되고 이리저리 유입된 문화 속에서 특히 서양에서 지어진 요람의 문화는 멀리 아기예수의 탄생에 깃든 구유로부터, 통나무 속을 파내어 만든 초기 형태로부터 나무상자(분리가 가능한 로커가 있는)로 발전하였고, 그 판자에 조각을 하거나, 상감세공, 금도금한 청동을 두른 기둥을 떠받치는 형식 등 각 시기별로 단순한 상자로부터 시작된 요람은 18세기 프랑스 궁정을 위한 정교하게 꾸민 호화로운 요람까지 다양한 형태가 있었다. 농부와 같이 일반적인 사람들의 가벼운 재질의 나무나 고리버들로 만든 요람부터, 중세의 왕이나 귀족의 유아들을 위한 금, 은, 보석 등의 장식이 달린 요람까지 그 형태가 무수히 많았다. 15세기~17세기에는 로커 위에 올려놓은 나무요람이 인기를 끌다가 18~19세기에는 요람을 바닥에서 더 높이 올리기 위해 양끝의 지지물에 매다는 고리버들 요람으로 바뀌었다.

요람이라고 하는 단어 자체가 지닌 의미로만 보아도 이처럼 전 세계적으로 널리 통용되는 단어는 드물 것이다. 포근하고 아늑한 장소로부터, 인재 양성의 장소, 문화와 운동 등의 발상지, 사물의 발생지나 근원지 등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생육(生育) 의미가 함축적으로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새 생명의 탄생과 그 생명 안음이 생장을 촉진하고 잘 자랄 수 있도록 애쓰는 그 ‘조건’ 모두를 함축한 말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온돌문화 등의 연유로 전통 요람의 기록이 적다. 유독 몸조리를 할 겨를도 없이 일터로 나가야 했던 제주도 여성들이 ‘애기구덕’이라는 바구니에 아기를 눕힌 체 짊어지고 다닌 흔적이 남아있다. 구덕을 바닥에 눕혀두고 일을 하며, 한쪽 발로 구덕을 흔들면서 일도 하는, 고된 삶을 살아야 했던 제주도 여성사의 한 일면이다.

현재는 플라스틱 합성재료들과 값싼 재질로 마구 찍어낸 아기 침대와 바운서, 요람형식의 유모차들이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근원으로 흘러들어와 바쁜 현대인의 바쁜 틈바구니를 헤집고 자리를 잡았다. 심지어 부모를 유혹하는 광고, 그 내용에서는 놀랄만한 점이 많다. 전동으로 흔들리는 기능, 아이의 움직임을 감지하여 동작별 흔들기 기능, 또는 진동을 주어 아이를 달래는 기능, 몇 곡의 기계음이 자장가를 불러주고, 전기열선의 기능으로 데우는 기능까지, 언뜻 보면 ‘좋다’라고 여겨질 수 도 있겠지만, 되뇌다 보면 무척이나 끔찍한 것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환호하고 소위 '뻑'가는 이 물건들의 가격은 어떠한가? 짧게 쓰고 버릴 물건이라는 인식이 강하여 싸구려 재질로 마구 찍어낸 저렴한 것으로부터 외국에서 수입한 수백만 원대의 제품까지! 의미심장한 것들은 파기한 체, 고속도로 편리를 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것이 새로운 사람, 새 생명을 대하는 태도는 아니다.


처음부터 생성되고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전통이 아니라면 누구라도 뜻있는 작업으로 의미를 부여하고 본연의 정신을 계승하여 요람을 만드는 작업을 진행하여야 맞다. 무분별한 외국문화와 편리에 물들어 우리는 우리들의 ‘처음’과 ‘생명’ 그리고 그 근본을 너무 쉽게 내팽개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의식주, 그 근본정신이 바로 서야 사람답게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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