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 카페, 회사. 돈벌이의 장면들

모든 곳이 누군가의 직장

by 한세계

좋아하는 카페에 다녀왔다. 그 곳에서 파는 모든 디저트는 홈메이드 디저트다. 바나나케이크가 특히 맛있어서 갈때마다 시킨다. 카페는 가볍고 튼튼해서 관리하기 편하고 취향타지 않을 그런 식기가 아니라 옛날 집에서 쓰던 식기같은 정겨운 어찌보면 엄청나게 취향탈만하고 무겁기도한 하나하나 모양이 다른 그릇. 디저트 그릇에는 언제나 작은 꽃도 하나 곁들여주신다. 카페의 소품들은 아주머니가 이전에 사셨던 여러 도시에서부터 모아온 오래 간직하신 것들이라고 하셨다. 테이블 다섯 여섯개 정도 되는 자그마한 카페인데 알바없이 아주머니가 운영하신다. 손님이 들어오고 나갈때 꼭 큰소리로 소리쳐서라도 마중을 하시고, 항상 웃고계시는데 손님들 테이블에 앉아서 대화나누는 장면들도 좀 봤다. 단골이 많으신 듯. 나는 근처 갈 일 있으면 꼭 들르고, 한시간을 걷거나 버스를 타고서라도 가는 곳이다. 그곳에 갈 때는 꼭 아주머니네에 방문하는 기분이 든다.


왜 그곳이 그렇게 좋은지 곰곰히 생각해보면. 비상업적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주가는 장소들을 떠올려보자. 자주가는 그 카페는 누군가의 직장이다. 마트도 똑같다. 미용실도 그렇고. 우리가 서비스나 물건을 구매하러 가는 곳에서 만나게되거나 기대하는 건 그래서 상업적인 행동이나 사건이다. 미용실 직원이 다정해도 팔기위한 전략이 되는 것. 사람과의 대화마저 네트워킹혹은 마케팅이 되는."마트, 카페, 회사의 장면이 모두 돈벌이의 장면 같다"는 감각. 이 곳에는 그게 없다. 그래서 '비상업적'이라는 것.


자본주의는 삶의 거의 모든 순간을 ‘돈벌이의 장면’으로 만들지만, 인간의 본질은 시장 너머의 관계와 의미 속에 있다. 그래서 내가 요즘 좋다는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시대에 뒤떨어진, 의미없는 행동으로 보이는 거 아닐까. 상업적 삶에 충실했던 시간을 내려놓고 지내며 무용한 것들에 마음이 더 가는 건 그런 이유일까. ‘돈벌이와 무관한 활동’들을 의식적으로 하고있고, 그것들의 의미를 더 자세하게 느낀다.


그렇다고 사회의 모든 장소에서 '비상업적' 으로, 모든 인간성을 내보이겠다며 살다가는 상처받거나 피해주는 일들이 생기겠지. 우리는 사회화되기를 요구받는다.

내 첫 사회생활이 그랬다. 고민이 생기면 책부터 구매하는 내가 첫 회사 들어가자마자 샀던 책 제목은 '자아 연출의 사회학'이다. 팀장님은 '회사에 놀러오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하는 식의 말을 자주 하셨었다. 반면에 나는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왜 그렇게까지..'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사수였던 선배에게 물어봤다. "어른이 되면 두개의 인격을 갖고 지내야 하는 걸까요?"선배는 대체로 그런 것 같다고했다. '사회화'되려고 애썼고 적당히 사회화 된채로 생활했다. 지난 날의 내 혼돈이 요즘 조금 이해된다. 나는 이런 어려움을 겪었는데 대부분의 사회화된 어른들이 이 모든 과정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궁금하네.


아침에 쇼츠하나를 봤는데 배우 차은우가 러닝하는 장면이 담긴 영상이었다. 멋진 차은우는 체력도 좋아서 너무 잘 뛰는 바람에 카메라에서 사라져버린다. 그런 차은우를 보며 본인의 저질체력을 탓하며 풍경밖에 못찍어 아쉬운 PD의 자막들이 나왔다. 언젠가부터 예능에 가끔 PD들, 그러니까 직업인의 개인적이고 인간적인 면모들이 나오는데, 사람들은 거기서 인간성을 느끼는 것 같다. 직업인으로서의 누군가의 면모들 속에서 가끔은 인간적인 장면들을 찾게되는 거 아닐까.


그러면 어떻게 비상업적인 장면들을 만들고, 마주치고 살 수 있을까? 내가 좋아하는 카페 아주머니는 사실 돈이 필요하지 않은 분이실지도 모른다. 아니면 사실 아주머니의 마케팅 전략이고, 사실 되게 힘들어하고 계신걸라면?(아닐거다. 그렇게 믿는다!) 모르겠다. 어떻게 하면 비상업적인 일을 하면서도 사는 데 필요한 돈을 충분히 벌 수 있을까? 하하.


내가 좋아하는 곳에 대해 생각하다 요가원도 마찬가지로 그렇다는 생각을 했다. 비상업적일 수 있는 공간/관계가 많아질수록 더 행복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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