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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맨> 더 맘껏 격하게 사랑하소서

by 김철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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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선택한 세계이니 더 맘껏 격하게 사랑하소서


제임스 건의 <슈퍼맨>에서 가장 (말 그대로) 날뛰는 존재는 슈퍼맨의 반려견인 크립토다. 영화 속 슈퍼맨이 자주 고꾸라지고 또 주저하는 탓에, 반대 급부로 슈퍼독 크립토의 존재감이 더 돋보이게 된다. 그런 크립토는 슈퍼맨을 정말 사랑한다. 아주 격하게, 뼈가 으스러지도록. 그 슈퍼파워를 가진 슈퍼맨이 버거워 할 정도다. <슈퍼맨>의 오프닝 시퀀스를 비롯한 여러 장면에서 크립토가 슈퍼맨을 향해 달려들 때, 제임스 건은 그 장면을 보는 사람이 다 아프게 연출한다. 어떤 장면에선 한 번쯤 슈퍼맨이 크립토의 몸통박치기를 피하길 바라게 되기도 한다. <슈퍼맨>은 그 통각에 관한 영화다.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아프다. 사랑을 주고받는 것은 행복한 일이지만, 때때로 너무나 강력한 사랑은 아프다.



개가 그렇게까지 강력하게 인간을 사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개를 너무 사랑하고 싶지만, 개의 그 아득한 사랑을 이해할 수 없기에 개와 함께 하기가 두렵다. 개의 강력한 사랑에 온몸이 아플까봐 두렵다.



<슈퍼맨>은 슈퍼맨이 개의 사랑을 깨닫게 되는 이야기다. 개의 사랑을 깨닫기 전에 슈퍼맨이 하던 사랑은 부모님으로부터 온 것이다. <슈퍼맨>에서 가장 이질적이라고 해야 되나, 그래서 가장 흥미로운 장면은 슈퍼맨이 ‘힘들 때마다’ 부모님이 생전에 남긴 홀로그램 영상 편지를 돌려본다는 것이다. 그 영상 편지는 특정 구간이 훼손되어 있는 상태다. 내용은 대략 이렇다. “엄마 아빠는 슈퍼맨 너가 지구인들을 사랑하는 착한 슈퍼맨이 되었으면 좋겠다.” 슈퍼맨은 인간들을 지키는 과정에서 신체적으로 지칠 때마다, 혹은 심리적으로 ‘현타’가 올 때마다 그 영상을 돌려보며 마음을 다잡는다. 부모님이 죽기 전에 내게 부여한 미션이니 힘들어도 다시 한 번.. 인간들이 미워도 다시 한 번.. 하면서.



그 사랑에 위기가 발생한다. 그 위기는 빌런인 렉스 루터의 파괴가 아닌, 복구에 의해 시작된다. 렉스 루터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기능적으로 고맙게도) 간신히 침입한 슈퍼맨의 기지에서 부모님의 훼손된 영상 편지를 복구한다. 이를 통해 슈퍼맨은 자신의 근간을 뒤흔드는 충격적인 말을 듣게 된다. 지구인들을 어여삐 여기지 말고, '사랑하지 말고', 지배하라. 여태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부모님의 말씀에 따라 지구인들을 지켜 왔던 슈퍼맨은 이때 가장 크게 흔들린다.



사랑할 것이냐, 지배할 것이냐. 물론 이 흔들림 자체가 새로운 건 아니다. 히어로 영화의 결말은 정해져 있기에 큰 긴장감이 형성되지도 않다. 당연한 말이지만 히어로가 인간을 지배할 리 없다. 영화에서 히어로는 인간을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 그러나 과연 영화에서 당연한 게 현실에서도 당연한가? 그 당연함끼리의 격차의 벌어지면 벌어질수록, 영화는 매력을 잃는 법이다. 절묘하게도 <슈퍼맨>에서 가장 지루했던 장면 또한 렉스 루터의 극단적인 선택에 의해 현실과 저 너머 공간 사이의 틈이 벌어지는 순간이었다.



<슈퍼맨>의 매력은 개가 책임진다. 개는 영화에서도 현실에서도, 그 당연한 사랑을 일관되게 지키는 존재니까. 그런데 심지어 개는 이 영화에서 주인공을 각성시키는 역할까지 책임지는 존재다.



그렇다고 <슈퍼맨>에 명확한 각성의 순간이 있는 것은 아니다. 슈퍼맨이 "크립토! 제발 도망쳐!" 하고 외침에도 포기하지 않고 달려드는 크립토.. 그러다 쓰러지는 크립토.. 그걸 보며 눈물을 흘리는 슈퍼맨.. 따위의 직접적인 묘사는 없다. 다만 그 모든 순간에 온 힘을 다해, 그리고 동일한 파워로 적들과 슈퍼맨에게 달려드는 선택을 주저하지 않는 개가 있을 뿐이다.



주저하는 히어로와 주저하지 않는 개가 있다. 그런데 개가 그렇게까지 사랑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소거법으로 접근해 보면, 부모님이 인간을 사랑하라는 유언을 남겼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영화를 보면 부모님의 사랑과 크립토의 사랑을 받은 슈퍼맨의 머릿속에서도 그 소거법이 진행된 듯하다. 정확히 어떤 깨달음을 얻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내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건, 슈퍼맨이 주체적으로 사랑 미션을 선택하는 순간뿐이다. 그때 그는 진짜로 강해 보인다.



어쩌면 사랑의 이유는 하나도 중요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 그 이유를 이해해야만 할 수 있는 사랑보단, 그 이유를 따지지 않는 사랑이 더 강력한 것이 아닐까? 인간을 사랑하기로 선택한 개, 지구인들을 사랑하기로 선택한 슈퍼맨, 그리고 그 유니버스를 사랑하기로 선택한 제임스 건. 제임스 건은 자신의 사랑을 선택한 대가로 아픔을 겪는 존재들을 가장 사랑스럽게 담아내는 감독이 분명하다. 아직 나는 내 몸을 얼얼하게 만들 정도로 격한 개의 사랑에 아파할 준비가 되지 않았지만, 그 통각을 당연하게 여기듯 사랑하는 존재들의 영화를 계속 보고 싶다. 그러면 세상과 영화도 많이 가까워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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