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이사> 소마이 신지, 1993

by 김철홍


%EC%8A%A4%ED%81%AC%EB%A6%B0%EC%83%B7_2025-07-26_%EC%98%A4%ED%9B%84_4.41.52.png?type=w773
%EC%8A%A4%ED%81%AC%EB%A6%B0%EC%83%B7_2025-07-26_%EC%98%A4%ED%9B%84_4.42.37.png?type=w773
%EC%8A%A4%ED%81%AC%EB%A6%B0%EC%83%B7_2025-07-26_%EC%98%A4%ED%9B%84_4.44.36.png?type=w773
%EC%8A%A4%ED%81%AC%EB%A6%B0%EC%83%B7_2025-07-26_%EC%98%A4%ED%9B%84_4.45.20.png?type=w773


<이사>에서 렌은 자꾸만 화면 밖으로 벗어나려 한다. 카메라는 가끔 그 젊은 에너지를 따라가느라 힘에 부치는 듯 보인다. 이야기 안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렌의 엄마 아빠는 렌이 진득하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길, 안타깝지만 그럴 수도 있는 어른들의 ‘손절’을 이해해 주길 바라지만, 렌은 아직 그럴 준비가 안 되어있다. 그래서 자꾸 도망치고, 어른들의 계약서를 찢는다.


영화엔 누군가가 렌에게 다가가는 순간, 그리고 렌이 그로부터 도망치는 순간도 많지만 그 반대의 장면도 적지 않다. 렌도 다가갈 때가 있고 또 실패한다. <이사>에서 그리는 세상 1990년대 일본은, 아니 어쩌면 온 세상은 다가가는 것을 서툴러 하는 사람들의 세상이다. 아이들의 행동이 이해 가지 않는 것만큼 어른들의 처신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집은 더 이상 안전한 보금자리가 아닐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사한다. 이때 이사는 더 좋은 곳으로의 이동이 아닌 회피일 뿐이다. 땅이 물에 잠길 것 같아 터전을 옮기는 것이지 업그레이드가 아니다. 혹은 영화의 원작 소설의 제목 《두 개의 집》(히코 다나카)처럼, 두 개로 분열되는 것이다. 도망쳐서 가야 할 곳인 집과 도망쳐 나와야 할 곳인 집. 그렇게 도망쳐 나온 사람들이 거리에서 다시 또 서로가 서로를 피해 도망친다. 어린이 렌은 숲으로 도망친다. 영영 그 숲에서 나오지 못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렌에게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도망치던 렌이 멈추는 순간이 하나 있다. 이때 아빠는 렌을 붙잡기 위해 두괄식으로 단어 하나를 던진다. “줄넘기!” 줄넘기는 아빠가 겨우 생각해낸, 렌도 이해할 수 있을 가족 상황에 대한 비유다.


“줄넘기 줄 긴 거. 그거 해본 적 있지?”


“응. 열 세명까지도 해봤어.”


“아빠가 준비한 줄이 너무 짧았어.. 그걸로 우리 가족 셋이서 넘다가 지쳐버린 거야.”


“다른 줄을 구하거나 묶어서 늘리면 안 돼?”


“미안해. 아빠는 이제 줄을 돌리는 게 힘들어.”


이 대화는 물론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 또한 이 영화에 본질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과도 아무런 상관이 없는 장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때가 이 영화에서 가장 진솔한 소통이 일어나는 순간인 것은 분명하며, 영화 외적으로도 가장 귀가 쫑긋해지는 순간, 영화가 가장 재미있는 순간인 것은 맞다. 만약 당신이 다른 사람들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면. 누군가를 잘 움직이게 하는 것만큼 잘 멈춰세우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면 이사하더라도 두 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슈퍼맨> 더 맘껏 격하게 사랑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