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지금 만나

- 당장 만나

by hanxs

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

가슴이 아프면 아픈 채로,

바람이 불면

고개를 높이 쳐들어서, 날리는

아득한 미소.


서정윤의 [홀로서기] 중에서


시인은 만나지 않아도 좋다고 했지만 기다림의 목적은 만남이다. 나는 기다림과 만남의 '사이'에 느껴지는 긴장감과 설렘을 생각하면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고 가슴이 콩닥거린다. 깃털이 코끝을 간지럽게 하 듯이 재채기가 날듯 말듯한 행복감이다. 기다림은 행복의 다른 이름이다.


종종 안부를 묻고 메신저로 한 번 보자 했지만 요즘 일이 바빠서 야근하고 집에 잠시 들렸다 오는, 얼굴 보기 힘든 지인이 있다. 언제 볼까요, 시간 좀 내요. 이쪽의 구애를 매번 일을 구실 삼아 약속을 잡지 못했다. 이 정도면 나를 피하는 건데 눈치 없이 조르나 싶은, 소심한 마음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었다가도 다시 만나자는 약속에 두둥실 부풀어 오른다. 일단 날짜만 정하고 점심 먹는 걸로 하자고 약속을 잡았다.

약속 당일 내가 연락했다.

나 : "점심 먹는 거 맞죠?"

지인 : "어디서 볼까요?"

나 : "아..." 그러고 보니 전화할 생각에 장소도 정하지 않았다. 머릿속으로, 비가 오락가락하는 평일 점심을 먹기 적절한 장소로 멀지 않은 곳을 검색해 보았다. 순간 이전에 지인과 간 적 있는 쌀국수집이 떠 올랐다.

'비 오는 날에는 국수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J식장 어때요?, 거기 가요. 괜찮죠"

싫다는 대답이 나오는 걸 원천 봉쇄하고 거의 반 강제로 식장에서 보자 하고 급하게 출발했다. 나와 지인 모두 10여분 차로 가는 거리니 적당했고 그때도 맛나게 잘 먹었던 기억에 나름 잘한 선택이라고 스스로에게 1점을 주었다.

그런데 식당은 녹색 검색창에 검색하면 나오는 이 지역의 '쌀국수 맛집'이란 사실은 간과했다. 12시 30분 전, 이른 점심이라 방심하기도 했고 사실 예약은 생각도 못했다. 식당 문 왼편에 의자에는 대기자를 위한 등록지가 놓여있었다. 맞다 여기 맛집이지 점심 예약도 없이 오다니... 이런 자책을 하면서 등록지를 집어 들었는데, 대기자 명단에 아는 사람 이름과 2명이라는 인원이 있다. 센스 있는 지인이 먼저 와서 등록한 것이다. 역시


첫 번째 대기로 있다가 테이블 정리가 끝나 창가 자리로 안내받았다. 자리에 앉으며 지인은'이런 맛집에 오면서 예약도 안 하다니....'라는 낮고 묵직한 돌직구가 들어왔다. 운 좋게도 대기자는 우리 다음부터 줄이 길다. 주문하고 금세 나온 얇게 썰은 양지가 듬뿍, 국물이 삼삼한 쌀국수를 후루룩 후루룩 먹었다. 우리가 그릇에 코를 박고 국물 한번 국수 후루룩을 반복할 때, 통유리 밖에서 차례를 기다리던 손님 두엇도 눈 빛으로 우리와 같이 국물과 국수를 같이 먹었다.


우리 지금 만나자 해서 당장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소중한 사람이다. 맨 날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존재감이 낮아지는 이유가 돼서는 안 된다. 쌀국수 국물처럼 진국인 사람은 언제나 묵묵히 곁에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기다림은

만남이다.

긴 기다림은 긴 대로

짧은 기다림은 짧은 대로

기쁨이 흘러,


그대는 주지 않아도

나는 받았으니 그걸로 행복


기다림과 만남

사이에는 미소가 그득



#hanxs

#쌀국수

#기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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