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뜩 아버지를 다시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일이 여러 가지겠지만 그중에서도 못 견딜 일은 생전에 지지리 듣지 않았던 일들이 하나 둘 떠오를 때다. 큰 사고를 치는 편은 아니고 겉으로는 범생이 같지만 은근히 작은 사고를 치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장남 겸 아들이었다.
소소한 반항중 하나는 단정한 머리, 2대 8 가르마까지는 아니라도 귀가 보이고 목덜미가 시원한 소위 스포츠머리를 소원하신 당신 뜻을 따른 적 없다. 심지어 군대에 가서도 사병인데 운 좋게 중대장 당번병을 하고 일병부터 부대 최고참이 되는 바람에 장발 스포츠머리를 했다. 또 대학 가기 전 풋사랑에 빠져서 고3을 통으로 날리고는 재수를 했다. 대학 때도 학교는 가지만 강의실 대신 학교 후문에 당구장과 볼링장, 야구 같은 진짜 운동에 빠져서 놀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운 좋게 취직은 했지만 복장 문제로 티격태격했다. IT회사의 프로그래머로 일을 시작했는데 아버지의 눈에는 대학 때나 직장 다닐 때나 청바지에 티셔츠 '쪼가리'를 입고 다니는 모습이 못마땅하셨다. 아들이 말쑥하게 정장 입고 나가는 모습 보는 게 소원이셨던 아버지에게 아이러니가 생겼다. 그토록 고대하는 '양복'입고 외출하는 날이라는 게 남들 결혼식에 가는 일뿐이었는데, 40이 되도록 결혼을 안(못)한 아들놈이 멋지게 차려입고 남의 결혼식만 열심히 다니는 꼴을 보실 때면 화병이 나실 지경이었다.
그래도 아버지는 언제나 ‘어이구 그놈 참, 허허' 하고 웃으셨다.
다행히 아버지는 떠나시기 전 '내 결혼식'에서 말쑥하게 양복 입은 내 모습을 보며 환하게 웃으며 우셨다.
왜 그랬을까? 어느 하나 어려운 일이 아닌데. 가장 슬픈 일은 이제 단정하게 양복을 입고 2대 8 가르마에 포마자 기름을 바르고 20세기 초반 흑백사진에 나오는 '위대한 개츠비'에 합류해도 손색없을 만큼 차려입어도 봐 주실 당신은 이제 없다는 사실이 너무 슬프다.
이런 회한을 접하는 이유는 어느덧 나도 아버지란 의자에 앉아 아이를 보면서다. 아들이었다가 아비가 된 나는 아이에게 '바라는 것'을 말한다. 아직 준비되지 않은 아이는 들어주지 않는다. 내가 아버지의 가슴에 알게 모르게 만든 상처를 아이부터 똑같이 받는 데자뷔 같은 삶이다.
내 뜻대로 아이가 하지 않거나 못하더라도, 언젠가 아이가 지금의 나를 그리워할 것을 알기에 너무 상념 하거나 낙담하지 않으려 한다. 내 아비가 내게 했던 그 모습 그대로.
작은 책상에 앉아서 팬케이크를 만들고 있는 아이 주변은 밀가루가 흩어져 있고 계란 얼룩이 범벅이다. 반죽이 고르지 못해서 프라이팬에 팬케이크는 울퉁불퉁한 비포장 자갈길처럼 되었고 게다가 까맣게 타기도 했다. 맛은 보기보다는 달달하고 제법 펜케익이다. 이걸로 족하다. 아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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