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재 아이와 바보 아빠
사람들이 하는 착각 중에 자신은 평균 이상일 거라는 착각이 많다. 나부터도 적어도 평균 이상의 운전실력과 다른 사람보다는 조금 더 너그럽고 좋은 사람이다라는 어디서도 검증받지 못할 자기애가 넘치는 사람이다. 첫 직장의 사수가 했던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한 사원은 지금은 잘하는지 모르겠지만 잘하고 있다는 자신감만은 정말 인정한다"
그렇다. 잘한다는 말이 아니라 잘하지 못하는데 잘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내 모습에서 긍정을 봤다는 말이었다. 사수는 마니또는 아니지만 그래도 자라나는 새싹을 기를 살려주려고 하는 좋은 사수였기에 이런 말을 들었다.
부모가 되어서 결심한 몇 가지가 있다. 그중에 하나는 절대 아이에게 강요하지 않기와 다른 하나는 우리 아이가 남다를 거라는 기대나 김칫국물 마시지 않기다. 부모는 아이에게 부모의 결핍을 투영하게 된다는 점을 이론으로 알고 있었기에 미리부터 결심하고 지키려 했다. 그래서 다른 아이들과 절대 비교하지 않으려고 안 보고 안 듣고 하는 중이다. 아이보다 1살이나 어린 5살 아이가 한글로 책을 읽는 모습을 보면 부럽지만 내색하지 않는 초인의 평정심을 유지했고 처음 먹어본 버섯 미역국을 설명하는데 내가 하는 묘사보다 더 세밀하고 정확하게 하는 모양을 보면서도 애써 태연했다. 조금 빠른 정도일 거야, 글을 못쓰는 대신에 표현력이 더 좋은 걸 거야라고. 우리 아이가 천재라는 모든 부모의 착각에 빠지지 않으려 부단히 애를 썼다.
오늘도 색칠놀이에 여염이 없는 아이 곁에서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어제 사온 '픽셀 색칠 책'이다. 책에는 그림이 없다. 가로 15칸 * 세로 30칸으로 바둑판처럼 그려져 있고 그 칸마다 번호가 매겨져 있을 뿐이다. 번호에는 각각의 색이 정해져 있다. 번호에 맞는 색을 다 칠하고 나야 결과를 알 수 있다. 어제 내가 골라주었을 때 어려울 거 같다면 선뜻 고르지 못하더니 오히려 다른 책 보다 더 재밌어한다. 첫 장과 두 번째 장까지 그리고 나니 재미를 붙여서 연달아서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다. 첫 장은 사자였고 두 번째 장은 악어가 나왔다.
"와, 잘 그리네, 재밌어?"
"응, 재밌어"
"와, 이번 그림은 뭘까? 궁금하다"라고 말했더니
"어, 이거는 오랑우탕이고 이거는 원숭이야"라고 아이가 말한다.
아직 하얀 바둑판 상태인 두 페이지를 가리키며 말한다.
"어!, 숫자만 보고 그게 보여?" 순간 흥분해서 다른 페이지를 넘겨서 보여주면서 이거는?
"응, 그건 앵무새야"라고 했다.
혹시 우리 아이가 천잰가라는 생각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현수, 어떻게 알아? 그게 보여?"
"응"
설레는 마음으로 책의 뒷장에 실제 완성 그림을 찾아봤다.
결론은 아이는 천재가 맞았다. 어찌나 자연스럽게 말했는지 반 백 년 가까이 살아온 아빠를 한순간에 바보로 만들었다. 아이의 장난에 냉정을 잃고 '혹시 우리 아이가 천재'라고 설레발쳤던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다시 한번 부모의 결심을 다잡는 계기가 되는 정신 번쩍 드는 일이었다.
아이는 천재였고 아빠는 바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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