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직은 아니라고, 한글 배우기를 거부한 6살 아들에게
까마득한 기억 속이라 확실하지 않다. 처음 한글을 이해한 순간에 기쁨이나 희열 이런 건 아마도 내가 아니라 부모님이 더 느꼈겠지라는 어렴풋한 추측만 할 뿐이다. 지금의 내가 부모의 입장에서 한글을 배우지 않겠다고 하는 아들을 보는 마음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글'에 맛을 들이고 나면 세상이 달리 보이고 세상을 스스로 열어가갈테데, 이 좋은 글을 배우는 일을 거부하는 마음을 이해하지만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일은 너무 어렵다.
주말 나들이 갈 때 운전대는 내가 잡지만 육아에 운전대는 아내가 꽉 쥐고 놓지 않는다. 물론 나도 의견과 방향에 대한 뜻이 있지만 대부분의 결정은 운전대를 쥔 사람 마음이다. 큰 틀에서 보면 아내와 나의 의견에 대립이 있는 부분도 거의 없다. 대부분 서로 고개를 끄덕일 만한 사항이다. 단 하나 '한글'에 대한 입장은 평행선이다.
6살-정확히는 44개월 차-이면 이제 한글을 '의식적'으로 배워야 할 시기라는 게 내 의견이고 아이가 스트레스받아하니 놔두라는 쪽이 아내다. 올초부터 종종 이 주제를 가지고 의견이 다름을 확인하는 상황이 있었는데, 결국 내가 한글에 대한 집착?을 버리기로 선언했다. 이 후로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다. 종종 일어나던 내전은 없다. 때가 되면 알아서, 스스로 깨우치는 것으로 일단락 지었다.
나도 아이기 억지로 배우는 걸 바라는 바는 아니다. 객관적 입장으로 보더라도 6살 남자아이의 언어의 사용과 말로 표현하는 표현력은 나보다 낫다고 할 정도로 상상을 초월한다. 언어에 대한 감각이 없지 않음을 알기에 수긍하고 한 발 물러났다. 글을 익히는 노력을 어휘력과 표현력에 다 쏟은 거라고 위안을 삼고 있는 중이다. 얼마 전 아기 엄마가 백화점 상품권을 잃어버려서 스스로에 자책하며 화를 내고 있을 때 아이가 "엄마 이건 화낼 일이 아니라 속상한 일이야"라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나는 순간, 나 보다 고수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심쿵해하면 아들 머리를 쓰담 쓰담했다.
내가 기억하는 한 새로운 세계는 문(문)이 몇 가지 있다. 한글을 알게 되던 그때, 학생에서 직장인으로 탈바꿈하던 그때, 싱글에서 결혼이란 상황으로 전환하던 때, 아이가 탄생하던 그때... 앞으로도 새로운 세계로 가는 문이 있겠지만 확실한 하나는 한 번 문을 열고 들어가면 그 이전 세계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다. 아닌 상태로 되고 싶다고 해서 되돌리지 못하는 특성이 있다.
아이는 한글을 알게 됨으로써 지식이나 정보는 얻겠지만 몰랐을 때 '글자'를 대하던 무심하고 시크한 자세를 유지하기는 힘들 것이다. 우리가 종종 이전 세계를 그리워 하지만 결코 되돌아 갈 수 없는 '슬픈' 상황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아이가 무지의 시절을 만끽하기 바라는 마음이다.
#hanxs #가지않은길 #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