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산 높은 곳에 사는 친구, 산양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산양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토종 동물 중 하나입니다. 험한 바위산에서도 자유자재로 뛰어다니는 모습은 정말 신기합니다. 뒷다리로 서서 높은 곳의 나뭇잎을 따먹는 모습이나, 거의 수직인 절벽을 오르내리는 모습을 보면 자연이 정말 대단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산양은 정확히는 '한국산양'이라고 불립니다. 중국이나 러시아의 산양과는 조금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몸집이 좀 더 작고, 털색도 약간 다릅니다. 주로 설악산, 오대산, 태백산 등 강원도와 경상북도의 높은 산들에서 살고 있습니다. 산양들은 무리를 지어 생활하면서, 주로 나뭇잎, 나무껍질, 풀 등을 먹고 삽니다. 특히 겨울철에는 눈 속에서도 나뭇가지를 찾아 먹으면서 추위를 견뎌냅니다. 새끼를 낳을 때는 접근하기 어려운 절벽 근처를 선택해서 무서운 동물들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합니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 우리나라 산양들에게 예상치 못한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바로 구제역과 아프리카 돼지열병 같은 가축 질병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아프리카 돼지 열병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야생에서 사는 멧돼지가 아프리카 돼지 열병을 옮기는 매개체가 되기 때문에 가축인 돼지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정부에서는 멧돼지 방지용 철조망 울타리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울타리를 만든 이유는 좋았습니다. 멧돼지를 비롯한 야생동물들이 농가의 가축들과 만나지 못하게 해서 병이 퍼지는 것을 막으려고 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울타리가 산양들에게는 예상치 못한 재앙이 되었습니다. 산양들은 넓은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먹이를 찾고, 계절에 따라 사는 곳을 바꾸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울타리가 생기면서 산양들의 이동 길이 막혀버린 것입니다. 먹이를 찾아 이동하던 산양들이 울타리에 막혀 더 이상 갈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울타리에 걸려 다치거나 죽는 산양들이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산양들은 원래 점프를 정말 잘하지만, 철조망 울타리는 그들에게도 위험한 장애물이었습니다. 울타리를 넘으려다가 철조망에 걸려 상처를 입거나, 심한 경우 목숨을 잃는 산양들이 생겨났습니다. 또한 울타리 때문에 산양 무리들이 떨어져서 살게 되면서, 새끼를 낳는 데도 문제가 생겼습니다. 짝을 찾기 위해 이동해야 하는 산양들이 울타리 때문에 만날 수 없게 되었고, 이는 전체 산양 개수가 줄어드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이런 문제들이 알려지면서, 환경단체와 연구자들이 해결책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울타리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지만, 산양들이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거나, 울타리의 높이와 구조를 개선하는 방법들을 연구했습니다. 지금은 산양들의 주요 이동 길에 '생태통로'를 만들어 울타리를 넘나들 수 있게 하거나, 울타리 윗부분에 산양들이 다치지 않도록 보호 장치를 달아주는 등의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또한 정기적으로 울타리를 점검해서 산양들이 걸려 있지는 않은지 확인하고 있습니다. 산양 이야기는 우리에게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하려다가 다른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가축을 보호하려는 좋은 의도이었지만, 야생동물에게 미치는 영향을 충분히 생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를 발견한 후 이를 해결하려는 노력들이 계속되고 있어서, 앞으로는 더 좋은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친구는 낭비둘기입니다. 길에서 비둘기를 자주 만나지만 그 비둘기들이 모두 우리나라 원래 비둘기는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나요? 우리가 흔히 보는 회색빛 비둘기들은 대부분 '집비둘기'라고 하는 외국에서 온 비둘기입니다. 반면 낭비둘기는 우리나라에 원래부터 살던 진짜 토종비둘기입니다. 사실 낭비둘기와 집비둘기는 겉보기에는 쉽게 구별하기 어렵습니다만 약간의 차이점이 있긴 합니다. 낭비둘기는 집비둘기보다 몸집이 조금 더 크고, 목 부분에 아름다운 무지개색 깃털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꼬리가 더 길고, 집비둘기와 다르게 꼬리 끝 쪽으로 가로의 흰 줄무늬를 가지고 있습니다. 울음소리도 집비둘기와는 다른 독특한 소리를 냅니다. 낭비둘기는 원래 우리나라 전체의 숲과 산에서 살았습니다. 주로 나무 열매나 씨앗을 먹고 살면서, 높은 나무 위에 집을 만들어 새끼를 길렀습니다. 집비둘기처럼 사람 주변에서 사는 것보다는 자연 환경을 좋아하는 조용한 성격의 새입니다. 그런데 20세기 들어 우리나라에 집비둘기들이 들어오면서 낭비둘기들에게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집비둘기는 원래 유럽과 아프리카가 원산지 인데 우리나라에 ‘평화의 상징’ 으로 도입되게 되었습니다. 1980년대만 해도 올림픽 등 주요 행사에서 ‘평화의 상징’인 집비둘기를 날리는 행사를 하곤 하였습니다. 이렇게 야생으로 날아간 집비둘기들은 낭비둘기보다 새끼를 더 많이 낳고, 사람이 주는 먹이에도 잘 적응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집비둘기와 낭비둘기가 서로 만나서 새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두 종류의 비둘기가 만나서 새끼를 낳으면, 그 새끼는 순수한 낭비둘기도 집비둘기도 아닌 섞인 비둘기가 됩니다. 이런 현상을 '교잡'이라고 하는데, 교잡이 계속되면 순수한 낭비둘기의 특징이 점점 사라져서 없어질 위험이 있습니다.
실제로 지금 우리나라에서 순수한 낭비둘기를 찾기는 정말 어려워졌습니다. 대부분의 비둘기들이 집비둘기이거나 집비둘기와 낭비둘기가 섞인 비둘기입니다. 일부 깊은 산속에서만 순수한 낭비둘기들이 겨우 살아남고 있을 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낭비둘기를 지키려는 노력들이 시작되었습니다. 우선 순수한 낭비둘기들을 찾아서 보호하고 새끼를 낳게 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또한 낭비둘기가 사는 자연 숲을 지키고, 집비둘기들이 자연 서식지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관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낭비둘기 보호는 다른 동물들보다 더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집비둘기들이 이미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고, 두 종류의 비둘기를 구분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교잡 문제는 한 번 일어나면 되돌리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전국의 동물원과 연구기관에서 순수 혈통의 낭비둘기들을 보호하고 새끼를 낳게 하고 있으며, 언젠가는 이들을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내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낭비둘기 이야기는 외래종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줍니다. 외국에서 온 동물이 들어오면 단순히 동물 종류만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토종 동물들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교잡 문제는 한 번 생기면 해결하기 정말 어려운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네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토종여우, 저어새, 산양, 낭비둘기. 이들의 이야기는 모두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사람의 활동이 야생동물들의 삶에 정말 큰 영향을 준다는 것입니다. 토종여우는 쥐잡기 운동이라는 좋은 의도의 정책 때문에 사라졌습니다. 저어새는 경제발전을 위한 갯벌 매립으로 집을 잃었습니다. 산양은 가축 질병을 막기 위한 울타리 때문에 위험해졌습니다. 낭비둘기는 외국에서 온 집비둘기와의 경쟁과 교잡으로 순수 혈통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첫째, 모든 정책이나 개발 계획을 세울 때는 야생동물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미리 충분히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좋은 마음으로 하는 일이라도 예상치 못한 결과가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한 번 사라진 동물을 다시 되돌리는 것은 정말 어렵고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리 예방하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셋째, 환경 문제는 국경을 넘나드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저어새처럼 여러 나라를 오가는 동물들을 보호하려면 국제적으로 함께 협력해야 합니다. 넷째, 외국에서 온 동물 문제는 정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 번 들어온 외래종을 다시 없애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들이 슬프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각각의 경우에서 문제를 깨달은 후 이를 해결하려는 멋진 노력들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토종여우는 복원 프로젝트를 통해 우리 산으로 돌아오고 있고, 저어새는 갯벌 보호 노력으로 개수가 늘고 있습니다. 산양을 위한 생태통로가 만들어지고 있고, 낭비둘기 보호를 위한 연구도 계속되고 있어 우리에게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