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릴라는 단순히 커다란 유인원이 아니라, 우리 인간과 매우 닮은 지적이고 감성적인 동물입니다.
이들은 숲 속의 거인이라고 불릴 만큼 엄청난 몸집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무리를 이끄는 '실버백' 수컷 고릴라는 최대 180kg에 달할 정도로 거대합니다. 하지만 이 거대한 힘은 주로 가족을 보호하고 숲에서 조용히 생활하는 데 사용됩니다. 고릴라는 사람과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손을 가지고 있어 섬세한 움직임이 가능하며, 다양한 표정을 통해 기쁨, 화남, 걱정 등 여러 감정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가족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적인 동물로, 5마리에서 30마리 정도가 무리를 이루어 서로 도우며 살아갑니다. 실버백이 무리를 지키고, 암컷들은 새끼들을 사랑으로 보살피는 모습을 보입니다.
또한 고릴라는 과일의 씨앗을 퍼뜨려 숲에 새로운 생명이 자라게 하는 '자연의 정원사' 역할을 하며 숲의 생태계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데 크게 기여합니다. 큰 덩치와 달리 대부분 조용하고 평화롭게 생활하며, 밤에는 잠자리를 만들고 낮에는 먹이를 찾거나 가족과 교감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가장 놀라운 특징 중 하나는 고릴라의 DNA가 인간과 무려 98%나 일치하여, 우리와 깊은 유전적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특징들을 통해 고릴라는 단순한 동물이 아닌 함께 지구를 살아가는 소중한 존재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릴라의 이야기는 안타깝게도 동화처럼 평화롭지만은 않습니다. 그들의 짙은 눈동자 속에는 우리가 만들어 낸 깊은 슬픔이 어른거립니다. 가장 큰 위협 중 하나는 바로 ‘부시미트(Bushmeat)’라 불리는 불법 야생동물 사냥입니다. 이는 단순히 생계를 위한 사냥을 넘어, 도시의 일부 부유층을 위한 ‘특별식’으로 팔려나가는 상업적인 밀렵으로 변질되었습니다. 사냥꾼들이 숲에 설치한 덫은 고릴라만을 노리지 않습니다. 어떤 동물이든 걸리기만 하면 그만인 무차별적인 살상 도구죠. 이 잔인한 올가미에 걸린 고릴라는 가족을 지키려다, 혹은 먹이를 찾으러 나섰다가 영영 돌아오지 못하는 비극을 맞이합니다. 구조된다 하더라도, 평생 손목에 깊게 파인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합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인간 세상의 전쟁과 분쟁은 고릴라의 삶을 더욱 벼랑 끝으로 내몹니다. 고릴라의 주요 서식지인 콩고민주공화국처럼 오랜 내전을 겪는 지역에서, 숲은 더 이상 안전한 피난처가 되지 못합니다. 정부의 통제력이 약해진 틈을 타 무장 단체들은 숲으로 숨어들고, 이들은 생계와 군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무분별한 밀렵과 벌목을 자행합니다. 숲을 지켜야 할 국립공원의 레인저(경비대)들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이들과 맞서 싸워야만 합니다. 인간의 탐욕과 갈등이 일으킨 총성이, 평화로운 고릴라 가족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총칼만이 위협의 전부는 아닙니다. 고릴라의 집인 숲 자체가 소리 없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 어쩌면 더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스마트폰과 노트북에 들어가는 ‘콜탄’과 같은 광물을 캐기 위해 숲이 파헤쳐지고, 대규모 농장을 만들기 위해 나무들이 베어집니다. 숲이 도로로 인해 조각조각 나뉘면, 고릴라 가족들은 서로 오갈 수 없는 섬에 갇히게 됩니다. 먹이를 구하기 어려워지고, 새로운 짝을 만나기도 힘들어지죠. 이는 결국 유전적 다양성을 해쳐 종 전체를 약하게 만듭니다. 우리가 무심코 누리는 문명의 편리함이, 지구 반대편에서는 한 종의 생존을 위협하는 대가로 돌아오고 있는 셈입니다. 이처럼 부시미트와 전쟁, 서식지 파괴라는 삼중고 속에서, 인간과 가장 닮은 우리의 친구는 조용히 스러져 가고 있습니다.
절망적인 이야기 속에서도 희망의 씨앗은 자라나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그 희망의 중심에는 ‘관광’이라는, 자칫하면 동물을 괴롭힐 수도 있는 활동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관광은 동물을 만지거나 먹이를 주는 소비적인 관광이 아닙니다. 철저한 규칙과 존중을 바탕으로 한 ‘생태 관광(Ecotourism)’입니다. 르완다, 우간다 등의 국가에서는 이 생태 관광을 통해 고릴라 보전의 기적적인 성공 스토리를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요? 바로 ‘가치의 전환’에 있습니다. 생태 관광은 고릴라가 살아있을 때, 밀렵으로 죽었을 때보다 훨씬 더 큰 경제적 가치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지역 사회에 명확히 보여주었습니다. 고릴라를 보기 위해 전 세계에서 찾아오는 관광객들이 지불하는 여행 비용은 국립공원을 운영하고, 밀렵을 단속하는 레인저들의 월급이 되며, 아픈 고릴라를 치료하는 전문 수의사 단체를 후원하는 자금이 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수익의 일부가 고릴라 서식지 주변 마을에 직접적으로 돌아간다는 점입니다. 학교가 세워지고,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는 수도 시설이 생기며, 병원이 지어집니다. 과거 밀렵으로 생계를 이어야 했던 주민들은 이제 관광 가이드나 공예품 제작자, 숙소 운영자로 새로운 삶을 찾게 되었습니다. ‘고릴라가 건강하게 살아 있어야 우리 마을도 풍요로워진다’는 인식이 싹트자, 주민들은 이제 누구보다 적극적인 고릴라의 보호자가 되었습니다. 외부인이 숲에 놓은 덫을 발견해 신고하고, 밀렵꾼에 대한 정보를 레인저에게 제공하는 등, 마을 전체가 거대한 보호망이 된 것입니다.
물론 이 과정은 매우 엄격한 규칙 아래 진행됩니다. 고릴라에게 인간의 질병(특히 감기 같은 호흡기 질환)이 옮지 않도록 관광객들은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하고, 최소 7~10미터 이상의 거리를 유지해야 합니다. 하루에 고릴라 무리를 방문할 수 있는 인원과 시간도 철저히 제한됩니다. 이는 고릴라의 스트레스를 최소화하고, 그들의 삶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최소한의 예의이자 약속입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한때 심각한 멸종 위기에 처했던 산악고릴라의 개체 수는 기적적으로 증가하여, 멸종위기 등급이 한 단계 하향 조정되는 감동적인 결과를 낳았습니다. 이는 인간의 이기심이 아닌 지혜와 공존의 노력이 자연을 어떻게 되살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빛나는 증거입니다.
고릴라의 이야기는 아프리카의 멀고 낯선 밀림 속에서만 펼쳐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운명은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우리의 손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서랍 속에서 잠자고 있는 오래된 스마트폰을 재활용하는 작은 행동 하나가, 불필요한 광물 채굴을 줄여 고릴라의 숲을 지키는 데 힘을 보탤 수 있습니다. 여행지에서 야생동물로 만든 기념품을 외면하는 현명한 선택이, 부시미트 시장의 수요를 줄이는 강력한 메시지가 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알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고릴라가 처한 현실과, 그들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친구들과, 가족들과 나누어 보세요. 우리가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목소리를 낼 때, 세상은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고릴라를 지켜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한 동물이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들의 눈 속에서 우리 자신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가족을 사랑하고, 평화를 원하며, 자신의 터전을 지키고 싶어 하는 그들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가장 근본적인 생명의 가치를 배웁니다. 고릴라를 지키는 것은 결국, 우리 안에 있는 가장 인간다운 마음을 지키는 일과 다르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고릴라를 위한 작은 숲 하나를 가꾸어 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 숲이 무성해질수록, 우리의 세상 또한 더욱 풍요로워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