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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 율 Mar 22. 2023

산을 닮은 글을 쓰다


족두리봉, 사진: 코레아트 (한 율)

바람결에 새소리만 올라탄 고적한 산속

고요한 울림 속에 깃든 호젓한 침묵


언어가 소실된 깊은 숲 속에서

송골송골 맺힌 고요함의 온도


쓰기 위해 삼켰던 수많은 낱말로

뒤늦게 운을 떼기 시작한 글자들


쓰기 위해서 점차 줄여나가야 했던 말과

쓴 감정을 삼키며 혼자 마음 졸였던 시간


세월을 새긴 글귀들이 들어선 울창한 관목림

돈이 안 되는 글귀들을 가지 치듯 잘라내면 무등산


길을 잃고 한참 헤매다 보면 마음속에 산을 품는 시간

꼭대기에 오르는 것은 단지 일련의 과정 중 하나일 뿐


험준한 정상에 발을 내딛고 헤아려보는 높이만으로

산을 오롯이 안다고 스스로 자부할 수 있겠는가


힘이 빠진 발걸음을 서둘러 재촉할수록

발 끝에 차이는 자갈들 사방으로 튕기고


깊어지는 풀벌레 소리가 다른 계절을 열 때

잉크가 벤 펜촉은 다른 장을 향해 다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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