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위를 덮는 겨울 눈

by 한 율
사진: 한 율(Coreart)
원(園)의 겨울


원을 그리듯 고궁을 거닐었던 어느 겨울날. 가느다란 눈발은 점차 굵게 변해 고궁을 점차 흰색으로 물들인다. 흩뿌리는 겨울 눈은 땅과 하늘의 경계를 지운다. 복잡한 삼차원 세상이 마치 흰색 단면을 보는 것처럼 단순하게 변한다.


고요한 순백색 풍경 속에서 조용히 차곡차곡 쌓여가는 눈. 눈 덮인 땅 위에 새기는 발자국. 발을 옮길 때마다 성긴 눈에서 뽀드득거리는 소리가 난다. 겨울이 걸린 차가운 나뭇가지마다 피어나는 눈꽃. 주위를 둘러보며 걸음을 옮기다 뒤를 돌아보면 지나온 자리 위로 하얀 눈이 덮여 발자취를 지운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자, 회백색 하늘에서 함박눈이 쏟아진다. 옷에 떨어진 눈송이는 잠시 각진 형태를 유지하다가 사르르 녹아 물방울로 변한다. 발이 푹푹 빠질 정도로 쌓여가는 눈. 어느 순간이 되자, 우산은 더 이상 불필요함을 깨닫는다. 우산을 접자, 우산 위에 쌓인 눈이 주위로 무겁게 떨어진다.


깃털처럼 가볍게 보였던 눈도 겹겹이 쌓이거나 뭉치면 무거워진다. 발목 위로 쌓인 눈을 헤치며 걸음을 옮기는 속도는 점차 느려진다. 그 순간에도 계속 소리 없이 쌓여가는 겨울 함박눈. 펑펑 쏟아지는 눈이 주위의 색깔과 형태를 모두 거두어 흰색으로 바꾸는 겨울.


사진: 한 율(Coreart)


눈 내리는 호숫가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겨울날에 소복하게 쌓인 눈. 강추위에 얼어붙은 호숫가 풍경. 얼어붙은 물 위에 쌓인 흰색 눈. 눈에 덮여 모호해진 호수와 땅의 경계. 눈꽃이 핀 겨울나무들. 사시사철 푸르게 빛나는 소나무의 초록빛도 눈에 덮여 희미해졌다.


눈이 내리자, 호수 뒤에 자리한 산 역시 희미한 그림자만을 어렴풋이 남겨 두었다. 윙윙거리는 겨울바람조차 자취를 감춘 설경 한가운데서 입을 닫고 소리를 지운다. 겨울철 숨을 들이쉴 때마다 쇠하게 맺히는 한기가 모처럼 기분 좋게 느껴진다.

정적인 겨울 풍경 속에서 같이 멈춰 선 생각들을 퍼서 다시 글로 담은 날. 창문 밖에선 눈이 내렸다 그치기를 반복하며 조금씩 쌓여간다. 재킷 소매에 떨어진 눈송이를 가까이서 들여다본다. 각진 형태의 결정이 시선에 맺힐 때쯤 눈은 녹아 방울로 맺혀 땅 위로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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