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나, 그때의 너에게 : 시간을 건너 쓰는 편지

32회(최종회). 엄마가 기다리는 바다로

by 하오빛

주름진 제대복을 입은 채

나는 뒤돌아보지 않으려 애썼다.

그러나 눈물은

묵묵히 흘러나와

기억 속 어딘가에 나를 묻어두고,

어둠을 가르는 입영열차는

기약 없는 천일의 여정을 향해 달려갔다.


가슴은 아팠다.

하지만,

천일 동안의 나의 희생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날들이기도 했기에,

나는 눈물을 머금은 채

스스로에게

다시 다짐을 새겼다.


따뜻했던 고향을 등지고

강원도 어느 한 곳에 와

새벽의 바람 속에 눈물을 흘렸다.

근무를 마치고 내무반 침상에 몸을 누이면

떠오르던 얼굴들—

그리움으로, 의지로,

나를 다시 일으키던 기억들.


스무 살,

청춘의 꽃잎을 다 떨구고

푸른 제복에 나의 젊음을 물들이던 날들.

그 시간들은 충혼이 되어

내 안에서 불타올랐다.


천일의 밤이 지나

야화처럼 스쳐간 그 날들.

이젠 육군 병장 약장 위에

조용히 새겨졌다.


정리된 전역복을 입고

거울 앞에 선 내 모습.

그 속엔 지나온 시간들이

겹겹이 비쳐 웃음이 피어난다.


멀게만 느껴졌던 그날이

드디어 오늘 내게로 왔다.


나라를 위해,

나는 충을 바쳤고.

전우를 위해,

좋은 친구가 되었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샛별이 되었다.


그 모든 나의 모습에게

오늘,

마음껏 헹가래를 치고 싶다.


지금의 나, 그때의 너에게 마지막으로 말을 걸어봅니다.

그때의 너야,


처음 군화를 신던 그날,

입술을 꽉 물며

눈물을 삼켰던 너의 어깨를 기억해.


어둠을 가르던 입영열차 안에서,

다짐과 불안이 교차하던 그 눈빛.

참 많이 애썼고,

참 많이 성장했지.


누구보다 따뜻한 사람으로

그 시간을 살아냈고,

누구보다 단단한 마음으로

스스로를 지켜냈어.


그리고 지금의 나는,

그 모든 시간을 건너온 너의 덕분에

이 자리에 다시 서 있다.


나라를 위해 충을 바치고,

전우를 품었으며,

사랑하는 사람을 향해

샛별처럼 빛났던 너.


그때의 너가 흘러

지금의 나로 와주었어.

이제 함께 가자꾸나,

우리 엄마가 기다리시는

저 바다를 향해 흘러가자꾸나.


정말 고맙고,

정말 자랑스럽다.


이제,

고생 많았다고.

그때의 너에게

진심으로 웃으며

따뜻하게 말해주고 싶어.


하오빛 라디오 청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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