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지금 어떤 반응을 이끌고 있는가?
이 시조는 겉으로는 내 뜻대로 살아왔다고 믿었지만, 돌아보면 스쳐간 작은 바람 같은 보이지 않는 힘이 내 삶의 방향을 바꾸었다는 깨달음을 담고 있다.
마지막에는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바람 같은 촉매가 되겠다는 다짐을 전하고 있다.
우리는 부추기는 행동에 대해 큰 책임감을 느끼지 않는다. 여기서 ‘부추긴다’는 것은 누군가의 행동에 한마디를 더하거나 작은 행동을 보태거나, 혹은 무시하고 방관하는 것까지 모두 포함한다. 그런데 이런 사소한 참여가 오히려 더 큰 잘못으로 이어질 때가 있다.
가령 누군가가 실수로 쓰레기를 길에 버렸다고 해보자. 아이가 그 행동을 몰라서 했다면, 그다음에 같은 행동을 반복할지 여부는 전적으로 주변 반응에 달려 있다. 그때 칭찬하거나 웃어준다면 아이는 쓰레기를 계속 버릴 가능성이 커지고, 무시하거나 그냥 지나쳐도 결과는 비슷하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괴롭힘도 마찬가지다. 다른 친구가 옆에서 한마디를 더하거나 같이 웃어주는 순간, 처음 괴롭힌 아이는 ‘저 아이가 잘못했으니 놀림받는 거야’라는 왜곡된 믿음을 갖게 된다. 우리는 흔히 주동자만을 비난하지만, 실제로는 주변 사람들이 촉매가 되어 잘못을 증폭시키는 경우가 더 많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아이가 바른 행동을 보였을 때 그 행동을 강화해 주는 관심과 촉매 역시 필요하다. 아이는 아직 무엇이 옳은지, 왜 옳은지 완전히 판단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옆에서 칭찬해 주고 의미를 설명해 주면, 바른 행동이 반복될 가능성이 커진다. 주변의 긍정적 ‘촉매’가 올바른 반응을 키우는 셈이다.
나는 어릴 적 촉매를 처음 배웠을 때 ‘다른 반응을 돕기만 하는 물질이 뭐가 그리 중요할까? 어차피 반응은 일어날 텐데’라고 생각했다. 직접 반응하며 변화하는 것이 중요하지, 스스로는 변하지 않고 그저 돕기만 하는 것이 무슨 큰 의미가 있을까 싶었던 것이다.
그러다 칼 세이건의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에서 다음 구절을 읽고 마음이 뒤흔들렸다.
“수백만 개에 달하는 분자의 생산을 제어하는 것이 촉매이다. 만약 당신이 촉매라면, 당신은 그 생물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조종간을 장악하고 있는 셈이다.”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부모로서, 교사로서 아이들의 삶과 학생들의 성장에 촉매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 생명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촉매 말이다.
오늘날 아이들은 디지털 자극과 정보 홍수 속에서 헤맨다. 이 복잡한 환경에서 올바른 반응이 일어나도록 돕는 일, 그것이 어른·부모·교사라는 삶의 촉매가 맡아야 할 책임이라 믿는다. 칭찬 한마디, 격려의 손짓이 아이의 방향을 바꾸는 촉매임을 다시금 생각한다.
결국 우리의 작은 언행이 누군가의 길을 좌우하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