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적 비교와 절대적 비교
비교는 왜 할까?
잘하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알고 싶어서 비교를 한다. 목표를 모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8시 30분까지 학교에 가는 것을 생각해 보자. 그럼 8시 20분에 도착한 학생이랑 25분에 도착한 학생이 비교를 하지 않는다. 물론 조금 빨리 왔다는 이야기는 할 수 있지만, 늦게 오더라고 기분이 나쁘지 않다.
통과냐 실패냐의 활동은 비교하지 않는다. 10개 중에서 8개를 넣어야 하는 놀이를 한다고 하면 8개 넣은 학생과 9개 넣은 학생의 기분이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어쩌면 커트라인으로 통과한 8개 넣은 학생의 기쁨이 더 클 수도 있다.
10개 중에서 내가 6개를 넣어도 다른 사람이 4개만 넣는다면 나는 기쁨을 느낀다. 내가 9개를 넣어도 다른 사람이 모두 10개를 넣는다면 슬플지도 모른다.
정확한 목표가 있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다른 사람과 비교를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내가 7개를 넣었지만 다른 사람이 9개를 넣었다면 그 사람에게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기가 더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 목표 없이 자신의 부족한 점을 다른 사람의 좋은 점과 비교한다. 그래서 자기의 발전을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깎아내리는 경우도 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나보다 뛰어난 점이 1개씩은 있다. 키가 작은 사람은 자신의 뛰어난 점을 생각하지 못하고 키 작음을 비교하고 슬퍼한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운동이 부족함을 비교하고, 운동을 잘하는 학생은 공부의 부족함을 비교한다. 서로가 자기의 부족함을 다른 사람과의 비교에서 찾는다면 누구나 찾을 수 있다. 모든 면에서 뛰어난 사람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행복하게 살고 있는 사람이 비교하는 것은 이해된다. 다른 사람의 행복을 찾아 배우려고 하기 때문이다. 물론 대부분의 행복한 사람은 비교를 하지 않을 것 같지만 말이다.
자기가 행복하지 않다면 선택적 비교를 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다른 사람의 뛰어난 점과 자기의 부족한 점을 비교한다면 행복할 사람은 없다.
자기 아이는 늘 함께 해서 좋은 점은 보이지 않고 부족한 점만 보인다. 다른 아이는 가끔 함께 하니 좋은 점만 보인다. 딱 선택적 비교하기 좋은 상황이다.
아이에게 비교하는 말을 하면 아이는 잘하려 하기보다는 다른 사람이 못하기를 기도하거나 방해할지도 모른다. 열심히 해서 성장한다고 해도 잘하는 친구를 보며 불행할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우리 아이가 이번 시험에서 80점이 목표라면 그 기준을 통과하면 잘하는 것이다. 다른 아이와 비교할 필요가 없다. 아이마다 잘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통과했다면 목표를 조금씩 올리면 된다.(비고츠키의 비계설정 참고 - 아이가 성장 가능한 목표를 세우는 것이 중요)
1달에 1권 책 읽기를 목표로 했다면, 그것의 달성 여부만 판단하면 된다. 다른 사람이 얼마의 책을 읽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른 사람이 책을 더 많이 읽었다면, 나는 다른 일을 하면서 책도 읽었기 때문에 더 대단한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비교를 하려면 전체를 알고 비교를 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사람의 모든 것을 알 수 없다. 그래서 상대적 비교밖에 할 수 없으며 그것은 정확하지 않다. 이것을 과학 용어로 변인통제가 불가능하다고 표현한다.
가끔 상대의 부족한 점을 찾아가며 상대적 비교로 행복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반대의 경우보다는 좋을지 모르지만 역시 위험하다. 행복하게 살 수는 있을지 몰라도 발전이 없으며, 언젠가는 나보다 나은 상대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나타나지 않더라고 나타날까 걱정하고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