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류하온

1. 봄을 기다리는 겨울에 태어난 여자

by 류하온

나는 겨울에 태어났다. 차가운 바람과 눈꽃이 내리는 겨울과 함께. 겨울의 아름다움을 제일 먼저 보게 되었지만, 사실 내가 기다리는 건 따스한 봄이었을지도 모른다. 일 년에 사계절을 몇 번이나 지나왔던가.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지나왔지만 항상 추운 겨울바람이 내 곁에 머물고 있는 기분이었다.


사실, 내가 그런 상황을 만들어낸 것일 수도 있겠지.

인생은 순간의 선택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 지나가버린 과거와 인연들이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고, 그렇다고 다시 억지로 끊어진 실에 매듭을 짓고 싶은 기분은 들지 않았다.

나는 홀로 살아남는 길을 택했고, 차가운 겨울바람에 익숙해져야만 했다.


가끔씩 겨울바람이 차갑지 않다고 느껴질 때도 있었다.

내 곁을 맴도는 겨울바람의 차가움에 익숙해져서일까, 아니면 봄을 기대하는 나의 간절함 때문일까.

추운 겨울에도 꽃은 피운다. '희망'이라는 꽃말을 가진 스노드롭처럼.

어쩌면 긴 겨울 속에서 겨울바람이 내 곁을 맴도는 이유는 다가올 봄의 향기가 아주 매혹적이기 때문이 아닐까.


봄의 향기에 취해서, 봄의 생명력에 취해서, 봄의 소리에 취해버린 나는 봄을 갈망한다.

항상 내 곁을 맴돌던 겨울바람을 지나서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봄의 향기를 손에 쥐려고 하고 있다.

손끝에 스치지도 못하는 봄의 향기를 또 느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겨울에 태어났지만 나는 봄을 그리워하고 있다.

한 발짝만 더 내밀면 봄의 초입인 것 같은데, 무심한 봄은 나에게 따스한 향기만 흘려준다.

봄의 냄새는 따스하고 포근하기만 한데, 왜 나는 봄에게 갈 수 없는 걸까.

이럴 거면 그 향기조차도 나에게 흘리지 말지. 나는 이미 봄의 향기가 너무 기분 좋은 것을 알아버렸거든.


그러니 나는 겨울의 한복판에 서서 겨울바람을 맞으며 찬란한 봄의 햇살이 나를 비추기를 기다리고 있다.

겨울보다 더 차갑고 냉정한 봄을 기다리는 나에게, 언젠가 봄의 향기에 취해서 웃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겨울에 피는 스노드롭의 꽃잎이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봄에 피는 개나리의 꽃잎이 활짝 피울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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