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온 Jun 20. 2023

자살, 그 뒷이야기

신은 아직, 아니라고 대답했다.

"번개탄을 피웠을 때, 어떤 마음으로 그랬나요?"


선생님께서 걱정스러운 눈으로 조심스럽게 질문하셨다. 주치의 선생님을 만나기 2주 전, 나는 집에서 번개탄을 피워 자살시도를 했다. 화재경보기가 울리고 이웃집의 신고로 119가 출동했다. 정신을 차렸을 땐, 온몸에 주사자국과 멍이 가득했고, 산소호흡기를 끼고 있었다.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가족을 보며 생각했다.


'이제 어떡하지'


매일 쓰는 일기장 가득 유언을 남겼다. 가족들과 친구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담아 꾹꾹 눌러썼다. 조금은 수고로운 사람을 아끼고 보살펴준 이들에게 건네는 마지막 인사가 길어지고 길어졌다. 바로 다음 날, 퇴근 후 나는 집 앞 꽃가게에서 꽃을 샀다. 그냥, 마지막으로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 뒤로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눈을 떠보니 병원이었고 잠깐의 조각 같은 기억들만이 남아 있었다.


"아까 연기 많이 마셨는데 괜찮아?" 여자 구급대원의 목소리.

"이제 됐어요" 명치가 미친 듯이 아파오면서 정신이 잠깐 돌아왔을 때 들렸던 의사 선생님의 목소리.

내 핸드폰 지문을 풀기 위해 손을 잡던 의사 선생님과, 모자를 눌러쓰고 있었던 언니의 모습.

어떤 커다란 통에 갇혀 산소 치료를 받으면서 귀가 아프다고 고통스러워했던 나의 목소리와 간호사의 목소리.


일산화탄소 중독과 폐렴 심각한 우울증의 진단을 받았다. 나라는 사람의 본능은 '괜찮은 척'을 한다는 거다. 그것도 꽤 잘한다. 심폐소생술로 인해 가슴이 멍으로 가득한데도 말했고, 먹었고, 웃었다. 이제 나에게 남은 것은 이 소식을 들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감당해 내는 것이었다. 화를 내는 사람, 걱정하며 울었던 사람, 혼내는 사람, 냉정하게 말하는 사람... 걱정이 담긴 말들이라서 걱정하는 말들이 생략되어 돌아왔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죽다 살아난 사람한테 할 소리인가 싶었다. 그러나 내가 정말 죽었다면 이들이 받았을 충격을 생각했다. 어쩌면 내가 미안해하는 게 맞는 건가 싶기도 했다.


내 앞에선 아무 말 없지만 가족들끼리 앞으로 나에 대한 치료와 거처를 논의하는 듯싶었다. 유언장에 나의 재정상태와 상황을 자세히 써놓은 탓에 가족들은 그 문제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듯싶었다. 살아있는 게 죄스러운 기분이 이런 걸까. 모른 척 웃었고, 더 괜찮은 척 인스타에 근황을 올렸다. 나는 괜찮다는 걸 보여줘야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큰 착각이었다.


주치의 선생님께 많은 사람들에게 섭섭하다고 말했다. 선생님께서는 이제는 힘든 걸 티 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더 이상 참지 말고 괜찮은 게 아니라는 것을 티 내야 한다고. 그래야 사람들이 나의 힘듦을 알아준다고 말이다. '힘들다'라는 말 한마디가 지구보다 무거워서 못하는 나에게는 아파도 괜찮은 척하는 게 더 쉬웠던 인생이다. 아무리 내가 죽을 만큼 힘들어도 심지어 죽다 살아나도 사람들은 모른다. 알 수 없다. 사실, 그게 맞다. 이해받을 수 없는 행동이니까.


다른 사람들은 어땠을까? 내 인생을 스스로 끝내려고 했지만 정신을 차리고 병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나와 똑같은 생각을 했을까? 그 사람들이 이 글을 읽고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신은 아직, 아니라고 대답했다고.


자살 후에 뒷 이야기가 있어 다행이다. 난 그렇게 계속 지금도 그 뒷이야기를 써가고 있다. 누군가에겐 자극적이고 보기 불편한 글이 될 수도 있겠지만 오늘도 깜깜한 방 안에 갇혀 나의 삶의 끝을 정하며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계속해서 말하고 싶다. 그때가 끝이 아니라고. 아직, 아니라고 대답해 주고 싶다. 살아내서 다행인 순간을 향해 더디더라도 걸어가 보자고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글을 쓰는 습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