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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온 Jul 04. 2023

사회불안증

직장 내 괴롭힘 (2)

평범한 여름날의 아침이었던 것 같다. 친구 집들이 선물로 수건을 잔뜩 샀는데 바로 쓸 수 있도록 빨아서 줘야겠다는 생각에 세탁기에 수건을 넣고 섬유유연제도 가득 넣었다. 유독 햇빛이 더욱 노랗게 베란다를 비추고 있었다. 작지만 아늑했던 예전 집 베란다에는 선물 받았던 꽃들이 아침 햇빛을 즐기고 있었고, 열어놓은 창문 틈으로 동네의 자작한 소음들이 들려왔다. 늦은 오전에는 여유로움이 한가득이었고, 버스 지나가는 소리와 매미 울리는 소리가 가득했던 여름의 한가운데에서 나는 헤드폰으로 노래를 들으며 바닥에 앉아 그 모든 풍경을 향유했다.


유독, 정말 날이 좋았던 하루였다.


빨래가 완료되었다는 경쾌한 알림음에 촉촉하게 빨린 수건을 건조대로 옮겼다. 여기서 탈탈 말리면 수건이 뽀송해질 것이라는 생각에 내 기분도 포근해지는 것 같았다. 친구가 기뻐할 생각에 괜히 웃음이 났다. 건조기를 돌리고 다시 베란다 앞에 자리를 잡았다. 악어인형(그때 당시 나의 애착인형이었다. 지금은 더러워지고 해져서 눈물을 머금고 보내줬다)을 품에 꼬옥 끌어안고 멍하니 창문 밖 하늘을 보며 앉아있었다. 평화로웠다. 예전 같았으면 이 시간에 눈치나 보면서 에어컨이 꺼지지 않는 사무실에서 겉옷을 걸치고 앉아 영혼 없이 타자기를 두들기고 있었을 테니 말이다.


"죽어"


여자 목소리였다. 갑자기 내 귀에 들려온 건 느닷없이 죽으라는 여자의 목소리였다. 마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듯, 그녀는 확신의 찬 목소리로 나에게 계속해서 말을 걸어왔다.


"죽으라고"


여전히 노란 햇빛, 잔잔히 흔들리는 꽃머리, 탈탈 돌아가는 건조기... 모든 것들이 그대로였다. 헤드셋을 집어던진 채 몸이 굳었다. 거실에 있는 엄마의 하얀 침대에 누워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부정했다. '아니야 그런 게 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니야 나쁜 년아 그냥 죽어버려"

"사실 말이야 네가 제일 나쁜 사람이고, 넌 피해자인 척하면서 그 사람들을 더 나쁜 사람으로 몰아간 거야"

"네가 제일 나쁜 사람이야 지금 너 하나 때문에 몇 명이 나쁜 사람이 됐니?"

"죽어 그냥 죽어버려"


쉴틈도 없이 몰아치는 이야기 속에서 정신이 혼미해져 갔고, 부정하던 내 머리는 점점 그 말에 설득되고 있었다. 아니, 그 말이 사실이라고 느껴지기 시작했다. 내가 그 사람들을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버렸고, 난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을 가해자로 만들었다. 참을 수 없는 수치감과 분노 그리고 알 수 없는 울화가 순식간에 나를 집어삼켰다. 울음을 터트렸다. 눈물을 흘리는 게 아니라, 정말 소리를 질러가며 울기 시작했다.


"너 이제 어떡할래? 그냥 죽어 그게 맞아"


계속해서 들리는 소리에 비상약을 털어먹고 거실 바닥을 기면서 괴로워했다. 노란 햇빛, 흔들리는 꽃머리, 탈탈 돌아가는 건조기 모든 것이 그대로인데 난 숨이 멎어버릴 것만 같았다. 너무나 고통스럽고, 숨이 멎을 것 같이 오열해도 목소리는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때부터 나는 정말 나를 놓아버렸다. 화장대에 있는 눈썹칼로 손목을 그어봐도 목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잠시 돌아온 이성으로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그저 살려달라는 말만 반복했다. 언니가 집에 도착했을 땐, 바닥에서 땀과 눈물로 절어 피를 흘리고 있는 동생이 있었다.


"미안해 내가 미안해 나 좀 죽여줘"

"내가 잘못했어"


그때에 난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가 되어 있었다. 미안하다, 잘못했다는 말 이외에 다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런 나를 데리고 언니와 엄마는 정신과가 있는 응급실을 찾아다녀야만 했다. (우리나라는 정신과가 없는 응급실에서 정신질환자를 받지 않는다) 눈에 초점이 없고 손목에는 피가 굳어 엄마 손에 질질 끌려 응급실에 들어가도


"저희 병원엔 정신과가 없어서 환자를 받기 어렵습니다"


말만 들을 뿐이었다. 세상마저 날 포기한 기분이 들었다. 아니, 이미 포기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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