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복하게 쌓인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는 차라리 바쁜 게 좋다고 여겼다. 몸이라도 움직이면 다른 생각이 머리를 점령하지 못하니까. 그런데 최근 글 한 글자라도 쓰지 못할 만큼 무척이나 바빴다. 회사에서 눈치를 보며 많은 업무량을 처리하느라 모든 에너지를 쏟고 와서 집에 오면 거의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누워있기만 했다. 주말에는 평일에 긴장해서 제대로 못 잔 잠을 몰아서 잤다. 금요일 밤에 잠들어서 토요일 밤에 일어나기 일쑤였다. 그렇게 토요일을 날리고 일요일만큼은 인간답게 살겠다며 다짐하지만, 일요일도 별반 다를 거 없이 늦은 오후에 일어나 겨우 한 끼를 먹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이건 사람이 아니라 거의 짐승 같은 삶이나 다름없다.
그도 그럴 것이 거의 한 달 가까이 출장을 다니느라 집에 제대로 있을 시간도 없었을뿐더러 출장을 가면 호텔에 가서 잠을 자야 하는데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서 잠을 자려니 잠드는 것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월세는 월세대로 나가고 나는 집을 들어가지도 못하고 굉장히 억울하지만 그럴 새도 없이 바빴다. 잠깐 주말에 집에 들릴 시간이 생겨 오랜만에 집을 들어갔다. 집에 사람이 살지 않으면 곰팡이가 피고 거미줄이 생긴다. 몇 주 집을 비웠다고 이렇게 티가 난다. 이 집처럼 지금 내 마음도 곰팡이가 소복하게 앉아있는 기분이다.
이제는 나의 인간관계를 어느 정도 인정하기로 했다. 오랜 시간 나와 함께 했지만, 우리 사이에 너무나 많은 시간이 흐르고 대화하지 못한 것 때문에 멀어진 인연도 나 자신과 싸우느라 둘러보지 못했던 인연도 받아들였다. 그 외로움을 견디기가 너무 힘들었지만, 주치의 선생님께서는 그 고독하고 외로운 시간을 이겨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타이밍이라는 게 참 이상하게도 그때부터 회사 일이 미친 듯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퇴근하고 또 주말이 올 때마다 나는 잠으로 그 시간을 외면했다. 그렇게 내 마음에 곰팡이가 피기 시작했다.
마음에 곰팡이 썩은 내가 진동한다. 그 썩은 내는 잦은 공황발작과 짜증 그리고 부정적인 생각으로 나타났다. 일을 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을 할 힘도 없어 좋아하던 책을 읽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너무 힘이 들었다. 그렇게 몸과 마음이 썩어가는 것을 방관하다 문득 느꼈다. 머릿속에서, 마음속에서 아무런 문장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을. 서글펐다.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난 늘 글로 생각하는 사람이었고 거리를 걷다가도 대화할 때도 어떤 문장들이 늘 마음을 지배하곤 했다. 그 문장과 순간을 기록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런데 요즘 아무런 문장 아니, 단어조차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지친다'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사람들은 마음의 곰팡이가 생기면 어떻게 청소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