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요하게 괴롭히는 우울
나의 우울은 아니, 정확하게 우울이라는 감정은 얄밉게도 나를 집요하고 교묘하고 망가뜨리고 있었다. 당연하게 누려야 할 행복과 그 나이에만 경험할 수 있는 추억들을 천천히 단계별로 앗아갔다.
내가 처음으로 기억하는 순간에도(정말 어린 나이였지만) 나는 그렇게 중요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지나고 보니 부모에게 받아야 할 사랑과 애착관계,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다니면서 학습하는 인간관계 그런 것들이 나에게는 없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사람을 싫어했는지 어린이집에 사람이 많다는 이유로(정확히는 아이들이 시끄럽다고 했다고 한다.) 그만두고 싶다고 말했고, 부모님은 그것을 받아들이셨다. “그래도 유치원은 가야지”라고 설득을 하거나 달래지 않았다. 그저 어린 딸에게 아빠는 말했다. “너는 유치원 졸업도 안 했으니까 초등학교 들어가면 남들보다 더 노력해야 해 너는 유치원을 안 다녔으니까” 남들보다 노력해야 한다는 그 말은 여전히 내 마음속에 새겨져 있다.
지치고 죽을 것 같지만 남들보다 더 노력해야 평범하게 사는 것처럼 흉내라도 낼 수 있기 때문에 남들이 쉽게 하는 아침에 일어나기, 학교 출석하기, 친구와 함께 놀기 같은 것들을 나는 그들보다 더 힘을 들여서 했어야만 했다. 난, 결국 그들보다 뒤처져 있는 사람이니까.
그때부터였을까 가엾게도 나는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 7살부터 동네에서 왕따를 당했다. 이 왕따와 괴롭힘은 나의 모든 교육과정에 걸쳐 이루어졌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난 가는 학교마다 왕따를 당했던 것이다.
이쯤 되니 확실해졌다. 난 정말 중요하지 않다. 난 뒤처져 있다. 급식을 다 먹지 않는 이유로 전학을 왔다는 이유로 이상한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같은 학급에 있는 학생들 거의 나를 놀리거나 욕을 하거나 무시했다.
그렇게 20살이 되어 대학을 입학했을 땐 난 그 흔한 대학친구를 사귀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는 방법을 몰랐다. 더 솔직하게는 상처받을까 봐 두려웠다.
20살이 되자마자 나는 정신의학과를 찾았고 그곳에서 종이 몇 장과 함께 나를 진단했다. ‘공황장애’, ‘우울증’, ‘불안증’, ‘강박증’ 나를 이렇게 4가지의 질환으로 표현했다. 근데 난 속이 시원한 기분이었다.
그동안 내가 잘못한 줄 알았던, 내 성격이 이상해서 그런 줄 알았던 것들이 이렇게 정의가 되니 씁쓸하고 슬픈 것보단 마음이 편해졌다.
나의 유아기부터 청소년기까지 나의 우울은 내 삶에 이미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고 그것을 멀리 보내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선생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렇게 병원을 다닌 지 8년이 되었다. 난 여전히 4가지의 질환을 앓고 있다. 2년 전에는 조현병 음성증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상태가 호전되다가 갑자기 안 좋아지고 다시 좋아지고를 8년 동안 반복했다.
아직도 나의 우울은 나에게 남아 여전히 속삭이고 있다. “넌 행복할 수 없어” “넌 진짜 나빠” “그냥 죽어버려” 8년의 시간이나 흘렀지만 해피엔딩이 아니었다. 아직 끝나지 않은 긴 싸움을 나는 지금도 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달라진 게 있다면 나의 우울을 인정하게 되었다는 것. 부정하지 않고 일부러 괜찮은 척하지 않고 ‘나는 우울증 환자다’ ‘나는 사회불안증이다’라고 생각하면서 나의 우울과 불안과 함께 공생하기로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