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꺼야?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갈 거야?” 누구나 한 번쯤 상상했을 법한 질문 아닌가. 만약, 내가 과거로 돌아간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그런 이야기가 나올 때면 나의 친구들은 웃으며 “그때 ㅇㅇ동 땅을 사놨어야 했어”라고 말하며 웃었다.
햄버거를 먹으며 무심코 바라본 거리에 여학생들이 웃으며 지나가고 있었다. “돌이 굴러가도 웃을 때지. 좋을 때야” 라며 중얼거렸다. 그래, 분명한 건 지나고 보니 어른들이 말하는 ’ 좋을 때‘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 같긴 하다. 그 나이에만 누릴 수 있는 환경과 감성이랄까. 우리는 어쩌면 그런 것들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 작은언니는(나는 위로 언니 둘이 있다. 그리고 늦둥이다) 고등학생이었던 나에게 항상 입버릇처럼 말했다. “교복 입었을 때가 좋은 거야” 난 학교에서 늘 지옥을 경험하고 있는데 다들 그때가 좋은 때라고 말했다. 정말 단 한 명도 빠짐없이.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28살인 지금의 나는 햄버거 가게에 앉아 그 여학생들을 보며 “좋을 때”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그런 좋은 때라는 것을 경험해보지 않은 내가 저 때가 좋을 때지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을 뱉어버린 게 괜히 웃겼다.
그 뒷모습을 한참을 바라봤던 것 같다. 교복, 가방, 친구들, 팔짱, 웃음 그런 조각들이 보였다. 하나의 장면이 아니라 조각처럼 보였다. 나에게 그런 것들은 하나의 장면으로 완성될 수 없는 것 같았다. 경험하지 못해서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런 조각들이 나에게는 아직 아픔으로 남아 있던 건지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건 그들이 함께 웃고 있었고 무엇보다 행복해 보였다.
“냄새나지?” 뒤에서 작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짜증스럽지만 비웃는 듯한 목소리였다. 난 우리 반에서 일명 ’ 냄새나는 애‘였다. 무슨 냄새인지는 모르겠으나 여하튼, 그 친구들의 한 마디로 난 그런 사람이 되었다. 아무도 나에게 다가오지 않는 것은 물론 오히려 벌레 보는 것처럼 나를 보며 코를 막고 피했다. 그리고 그 친구들은 점점 더 목소리를 키워 반 전체가 나를 피하게끔 만들었다.
나와 짝꿍이 되면 책상을 떨어뜨리고 어떤 친구는 나와 짝꿍이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나의 뒤에서 욕을 하며 말했다. “아, 자살하고 싶어.”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가방을 싸서 교무실로 가 조퇴증을 끊고 집에 갔다. 아마 그날이 내 인생의 첫 자해를 한 날일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세상이 멈춰버리고 그 아이의 목소리만 들렸다. 정말 죽고 싶을 만큼 내가 그렇게 싫은 걸까? 결국 그 친구는 반장의 권한으로 자리를 바꿨다.
모두가 좋을 때라고 말할 때 나는 이러한 일들을 매일같이 겪었다. 어느 날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 나한테 정말 냄새가 나는 건가?‘ 학교 가기 전 샤워하면서 옆에 있던 빨래 섬유유연제를 그대로 내 몸에 부었다. 화장실 안이 섬유유연제의 향으로 가득 차고 있었다. 그렇게 등교하자마자 들은 말은 “아, 어디서 또 냄새나네” 그때 생각했다. 난 그들이 말하는 그런 ’ 냄새‘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지만 그들의 괴롭힘은 여전했다. 그런 나를 지옥에서 건져주고 지켜준 친구가 있었다.
점심시간마다 급식실에 가서 밥 먹는 게 너무 힘들어서 화장실에서 숨어있던 날들이 많았다. 그러다 용기를 내어 친구에게 찾아가 말했다. “점심시간에 밥 같이 먹어줄 수 있어?” 2학기가 시작될 여름 무렵이었다. 중학교 친구였다. 같은 고등학교에 배정받았지만 반이 떨어져 너무 아쉬워했던 게 어제 같은데 너무도 많은 시간들이 나를 지나가고 있었나 보다.
“왜?” 악의가 없는 정말 이유가 궁금한 질문이었다. “같은 반 친구들끼리 안 먹고?” 누구에게 한 번도 얘기하지 않은 시간들이었다. 그저 마음속에만 묻어둔 나만의 지옥이었다. 그 지옥을 꺼내는 것이 너무 두려웠다. 친구의 추궁에 나는 어쩔 수 없이 지난 1학기 동안 있었던 일들을 말해주었다. 친구는 내 얘기가 끝나자마자 당장 교무실을 가자며 화를 냈다. 생활지도부 선생님에게 가서 다 말하자고.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당연한 수순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어리석었고 미련했다. 어차피 나라는 사람만 빼고 보면 그들은 공부를 나름 열심히 하는 모범생쪽에 속해있었으니까. 일을 크게 벌이는 것이 두려웠던 것 같다.
그런 나에게 친구는 말했다. “녹음기 있으면 녹음기 켜고 다니면서 걔네가 무슨 말하는지 다 녹음해. 카톡 한 거나 문자 한 거 있으면 다 캡처해 놓고 그리고 점심시간만 말고 그냥 계속 우리 반에 와 있어” 과장을 보태 그 친구는 내 삶의 구원자였다. 혼자서 지옥에 갇혀있을 때 내 손을 잡아주었던 친구였으니까. 그날 이후 나는 그 친구의 반 아이들과 점심을 먹고 쉬는 시간을 보내고 심지어 현장학습으로 외부에 나가는 날도 나는 그 친구들과 함께했다. 나를 챙겨주었고 나 대신 화를 내줬으며 그 학년의 나머지 시간들을 함께해 줬다.
이게 내가 가장 좋았을 때 겪었던 일들이다.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갈 거야?” 나는 여학생들의 뒷모습을 보며 말했다. “글쎄, 난 딱히” 그때의 내가 너무 안쓰러웠고 위험한 생각을 매일 하며 하루하루 나를 죽였던 그 시간들을 다시 겪고 싶지는 않았다. 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내 상황이 바뀔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시 돌아가도 그들은 똑같이 나를 괴롭힐 거고 난 또 똑같이 침묵할 것이다.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매일 했다. 나 혼자 그 시간들을 버텨낼 자신이 없었고 무엇보다 어린 나에게 그 일을 다시 겪으라고 못 할 것 같다.
가장 예쁘고 가장 좋아야 할 시절. 나는 그런 시간을 경험할 새도 없이 여기까지 왔다. 돌만 굴러가도 웃을 때 나는 커져만 가는 나의 우울에 잠식되어 점점 깊이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끝을 알 수 없는 곳까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