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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INFJ 0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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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피 Dec 01. 2024

소년 전선

- 시


세 번째 유치가 빠졌을 무렵 브라운관 앞에 앉아 있는 엄마는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존재였다
밤의 틈 사이에 숨죽이고 있는 그들이 시퍼런 저격총을 들이밀고 엄마를 쏘고 말 것 같았다
빚독촉이란 단어를 전화기 옆 메모지에 썼다가

엄마에게 혼났다  그런 말은 배울 필요가 없

젖은 손으로 나를 어루만졌다
빚진 게 없고 잘못한 것도 없었는데 엄마는 늘 젖어있었다
축축한 공기가 늘 침대 위를 덮고 있었다
잠이 들수록 축축해지며 무거워졌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엄마보다 커지고 싶었다 아빠보다도 커져서 엄마도 아빠도

내게 힘든 일을 털어놓길 바랐다
그러면 나만 축축해지고 무거워지면 끝날 일이니까
엄마가 아무리 축축해져도 건져 올릴 수 있을 테니까
행복한 가정이길 바랐다
같은 시간 열에서 독촉의 대상들은 행복했을까

엄마가 비구름처럼 팽창할 때면 나는

커지고 싶었다 더욱 빠르고 맹렬하게
아빠가 적란운이 되어 돌아올 때면 우리 집 천장은

부서져 엄마와 내가 우산처럼

뒤집어쓴 이불 위로 떨어졌다
낙하에너지 없이 떨어지던 날카로운

조각들은 이불을 뚫고 우리를 꿰뚫었다

사촌형, 누나들은 태어날 때부터 다 큰 성인이었을 것이다
독촉 따위 배우지 않은 채로 태어났을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 누가 더 좋냐며 내게 묻곤 했다
멋모르는 분쟁 속에서 나는 작고 여린, 소년병이었다
총을 들고 그들에게 맞서야 했다
작은 방에 참호를 파고 베개를 세워 총검술을 연습했다
불침번을 서며 갈고닦았다
엄마도 아빠도 계속 내 군번줄을 빼앗았지만
뒤돌아서면 다시 전쟁터에 서있었다

뭉뚝한 탄환이 입술에서 회전하며 갈 때의 희열
탄환의 운동량은 사람의 살갗을 손쉽게 뚫었다
파고들었다 깊숙 대상의 속마음까지
세포 단위로 감정을 뒤흔들었다
탄환을 품고 있는 마음은 방탄이 아니란 걸
명사수가 되고 나서 알았다
탄환을 맞고 견디는 법부터 배웠어야 했다

총상이 아무는 동안에도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놓을 수 없는 총구는 트라우마처럼 무뎌졌지만
십수 년을 잠복한 적은 언제든 우리를 덮칠 것임을 안다
고요한 불안 날이 갈수록 빼족해진다
소년 전선은 끝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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