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연은 우연의 옷을 입고 나타난다”
영국의 세계적 역사학자이자 국제 정치학자인 E. H. 카(Edward Carr)가 말했던 것처럼,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의 우연은 필연이 아니었다 싶다.
2022년 초, 성수동에서 공인중개사를 하고 있던 나에게
건대에서 베이커리카페를 운영하던 친구가 연락이 왔다.
“자기 나 가게 내놓았어. 주인분이 건대 근처 부동산 몇 곳에 내놓긴했는데 자기가 거래하면 나는 더 좋으니까!”
친구가 카페를 오픈한지 얼마 되지 않아 가게를 접는다니 안타까운 마음 반,
꽤 좋은 공간인데 누군가한테 준다는게 아깝다는 마음 반으로 친구 가게에 방문했다.
친구네 가게는 건대 맛의거리에서 한블럭, 그리고 또 한블럭 들어간 골목에 위치하였는데,
가시성은 떨어져서 워크인 고객을 유치할 수는 없으나
온라인 마케팅을 통해 찾아오게 한다거나,
배달을 위주로 한다면 승산이 있을 것 같은 입지였다.
게다가 새건물 1층을 단독으로 사용하여 매우 깔끔하고 인테리어도 예뻤다.
부동산쟁이였던 나는 실제로 보고나니 더 마음에 들어서 뭔가라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동생과 함께라면 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이 샘솟았다.
“동생, 친구네 가게가 매물로 나왔는데 너무 괜찮아보여. 우리가 임차할까?”
“응? 갑자기?”
동생은 당황했지만 싫지만은 않은 눈치였다. 동생은 사실 언젠가 요식업을 하겠다는 막연한 꿈을 가지고 있었다.
“응. 요즘 코로나로 배달음식점이 장사가 잘되고, 배달 메뉴가 다양화되고 있는 시기라 지금 진입하는 것도 괜찮아보여. 이 입지면 성수 직장인, 건대 세종대 학생들, 주변 1인 가구에 한강까지도 배달 공략이 가능하다고!”
그리고 우린 며칠 간의 고민 끝에 친구한테 연락했다.
“자기 나 그 자리에 배달 가게 해볼까 하는데, 조건은 어떻게 돼?”
당장이라도 계약할 기세로 조건을 물었으나 섣부른 판단이었다.
관심을 가지고 더 알아보니 현재 용도가 휴게음식점이라 일반음식점 장사를 위해서는 용도변경이 필요하고 주방 등 설치를 위해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보였다.
“음.. 여기에서 음식점은 쉽지 않겠어"
친구에게도 빨리 이야기하고 다른 임차인을 구해보겠다고 전했다.
우리의 음식점 꿈은 그렇게 일단락되는 듯 보였으나,
하나에 꽂히면 뭐라도 해야하는 성격에 음식점이 계속 눈에 아른거렸다.
“안되겠어 동생, 인근에 음식점 매물 나온거 몇 개만 찾아보자"
네이버부동산으로 여러 중개사들에 컨텍해서 인근에 나온 오픈된 매물은 모두 봤던 것 같다.
그런데 생각보다 높은 권리금에 좌절하며 터덜터덜 성수동 사무실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골목에 한 부동산이 보이는데 왠지 들어가고 싶었다.
“우리 마지막으로 여기만 들렀다 가자”
그리고 그 곳에서 우리는 운명같이 지금의 가게를 만났다.
부동산에서는 마침 바로 옆 가게가 나왔는데 아까워죽겠다고 왜 큰 돈 들여서 리모델링 다해놓고 얼마 되지도 않아 정리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면서 이야기했다. 그 가게는 우리 부모님 나이대로 보이는 부부가 치킨집으로 운영 중이 였는데, 몸도 지치고 힘들다면서 정리를 하고 싶다고 했다.
주변 시세 대비 권리금이 낮다는 점, 이미 공사가 다 되어있어 시간, 비용 절감이 가능하다는 점, 주변에 술집들이 있어 워크인도 확보가 가능하다는 점 등
여러 요인을 고려했을 때 이 매물은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와서 자세히 상권 분석을 했다.
배후인구와 유동인구 등을 보고 인근 주요 고객이 누구인지 파악했더니
해당 입지에 20대 여성 유동인구가 가장 많았고
건대 상권이 골목까지 확장되고 있으며,
평일엔 성수동 직장인들이 넘어오는 것을 확인했다.
입지로는 승산이 있을 것 같았다.
<SGIS 통계지리정보서비스>
<서울시 상권분석 서비스>
그 외, <소상공인 상권정보 시스템>
그리고 주말이 지난 후 귀신에 홀린듯이 바로 계약을 했다.
(친구 가게도 얼마 뒤 임차인을 구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