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관계는 끊어내는 용기가 필요하다.
학창 시절, 나는 늘 친구가 많은 편이었다. 이상하게도 나는 친구들이 나를 참 많이 따랐다.
정확히는 내 친구가 많다고 말하기보다는 나와 친구가 되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 많았던 것 같다. 겉보기에 내가 있어 보이는 아이였던 걸까?
초등학교, 중학교를 지나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 집안 사정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고등학교를 혼자 다니게 되었다. 그리고 난 차라리 그게 좋았다.
우리 집 사정을 잘 아는 어쩔 수 없이 가까이 살았기 때문에 그동안 친구 관계를 유지했던 아이들과 멀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릴 때는 아이들의 편협한 사고와 그 주변 부모들의 색안경 때문이라도 친구들에게 마음을 열고 싶지 않았다.
내가 다니게 된 곳은 여자 고등학교였다. 여고라서 괜히 설레는 마음도 있었다.
그리고 여고를 가게 되면서 더 귀찮아진 상황을 느끼게 됐다. 여자들은 늘 함께 하고 싶어 하는 무리 지어 다니는 것이 나를 번거롭게 했다.
낯선 곳에서 온 이방인 같은 나랑 친해지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또 많았다. 감추고 싶은 게 참 많았던 나는 혼자 조용히 다니고 싶었는데, 친해지고 싶다고 편지를 쓰고 쉬는 시간에 내 곁에 찾아오는 친구들이 부담스러웠다.
그렇게 고등학교 3년 내내 친구들에게 늘 둘러싸여서 학교를 다녔지만, 마음은 늘 닫힌 상태로 학교 생활을 했다. 그리고 사실 그 모습을 친구들은 다 알아채고 있었다.
"너는 늘 벽이 있는 것 같아."
고등학교 3년 내내 같은 반이었던 친구가 한 이 말 한마디에, 나는 참 연기에는 소질이 없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대학교에 가서 나는 처음으로 마음 놓고 친구들을 사귄 것 같다. 내가 끊어내고 싶으면 언제든지 끊어낼 수 있고, 근처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매일 같은 공간에서 함께 있어야 한다는 이유로 억지로 친구를 하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다들 고등학교 때 친구가 절친이고 가장 오래간다고 말하곤 한다. 나에게 가장 친한 친구들은 대학교 친구다.
오히려 대학 동기들은 심플했다. 마음이 맞으면 놀고, 아니면 각자 할 일을 하면 됐기 때문이다.
관계에 연연할 필요도 없었고, 각자 연애도 하고 아르바이트도 하고 놀 거 다 놀다가 함께 모여서 만나도 즐거웠다. 이제 진짜 친구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은중과 상연' 드라마를 보면서 처음에는 상연이가 너무 나쁘다고 생각했다. 가진 게 많았던 상연이네 집을 보며 부러워했던 은중이의 시선이 나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연이네 집이 무너지면서 상연이가 은중에게 느끼는 질투, 자존감 하락 등의 감정을 보면서 나의 옛 모습이 떠올랐다. 상연이를 이해하고 싶었던 게 아닌데, 상연이의 모든 시선이 그냥 나 같아서 설득당했다.
부자는 아니지만, 안정적으로 기댈 수 있는 가정이 있다는 것. 응석 부릴 수 있고 하고 싶은 게 생겼을 때 흔쾌히는 아니더라도 지지는 받을 수 있는 것. 엄마가 무슨 직업을 갖든 떳떳하게 엄마가 하는 일을 소개할 수 있는 것.
내가 바라던 모습이 은중이의 삶이었다는 걸 나도 안다. 그냥 받을 사랑받고,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도록 지지만 받으면 됐기 때문이다.
나 또한 상연이처럼 혼자 고립되는 걸 좋아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드라마를 보면서 흘려보내는 내용이 없다. 대신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게 된 것도 사실이다.
친구들이 나를 찾으면, 내가 친구와 만나고 싶으면 1년이고 5년이고 안 보던 친구라도 기꺼이 만나게 된다. 그리고 친구들을 못 만났던 몇 년이 시간이 외롭지 않게 되었다.
우리는 각자 자기 일을 하다가 마음속의 응원을 한 번씩 소리 내어 표현하면 그만이다.
혼자가 익숙해진다는 게 어릴 땐 외롭다고 느꼈는데, 지금은 차라리 좋다. 어차피 혼자 외롭지 않도록 스스로 단련해야 하는 게 우리에게는 필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불편한 친구가 있다면, 끊어내는 게 맞다. 외로움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좋겠다. 외로움에 익숙해지면 생각보다 편하고 자유가 찾아온다. 우리는 이 자유를 가꿀 수 있도록 미리 연습하는 시간을 늘려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