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권선징악

가까운 사이, 감정을 살펴야 하는 사이

by 리하루

불편한 채무 관계

2017년 결혼을 했다. 아빠, 엄마의 도움 하나 없이, 사회 초년생의 악바리로 내가 모은 돈, 남편이 모은 돈으로 어렵게 전세를 구했다. 물론, 결혼식 비용도 우리가 부담했다.


20대 후반이라는 나름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해서인지, 친구들이 많을 때였다. 축의금도 상당했다는 뜻이다.


결혼식 비용은 부모님이 정산하고, 축의금도 부모님이 가져가는 것이 맞지만 양가에 잘 말씀드려서 결혼식 비용 부담도, 축의금 비용도 다 우리의 몫으로 했다. 덕분에 부모님이 뿌린 축의금까지 우리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아빠의 경우만 빼고 말이다.


아빠는 주변 친척들이 결혼할 때, 축의금도 가전도 빵빵하게 선물했다. 그리고 내가 결혼할 때는 돈이 없었다. 나에게 결혼할 때 1,000만 원은 주겠다던 아빠의 포부는 200만 원의 지원과 함께 800만 원의 추가 언급이 사라졌다. 그리고 친척들이 아빠에게 준 축의금 또한 아빠가 사정이 어렵다며 나에게 주지 않았다.


2019년, 전세를 2년 채우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려고 현금을 모으고 있었다.

2019년 초, 회사에 있는 데 아빠한테 연락이 왔다.


"5천만 빌려줘라. 5천이 안 되면 3천이라도 빌려줘라. 제2 금융권이라도 받아줘라."


꼭 갚겠다는 말과 함께 돈을 빌려달라는 말에 마음이 무너졌다. 아빠만큼은 내가 금전적으로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엄마 하나만으로도 벅찬데, 아빠마저 무너진 재정 상태가 버거웠다.


당연히 아빠에게 돈을 빌려주고 싶지 않았지만, 오빠가 아빠 회사에서 잠시 근무를 하기로 결정된 상태라 내가 빌려주지 않으면 아빠보다는 오빠의 앞날이 걱정되는 상황이었다.


2019년 초에 시작된 채무 관계, 그 끝은 바로 지난주 2025년의 겨울이 되었다.


혈연은 어디까지 용납이 될까?

먼 훗날 아빠가 이 세상에 없는 어느 날, 혼자 뒤돌아보며 후회하기 싫었다. 그래서 아빠에게 자주 연락하지는 않아도 아무렇지 않은 듯 연락을 이어갔다.


채무가 생기자 아빠도 나를 더 어려워했다. 나도 나와 아빠의 관계를 벗어나서 함께 돈을 벌고 있는 남편의 존재가 생기니까 아빠를 대하는 게 더 불편했다.


아이가 태어나고 아빠에게 아이를 보여주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남편은 그래도 아버님인데, 우리 아이들의 외할아버지인데 만나야 한다고 말했지만, 당연한 건 없다고 생각했다. 아빠도 나에게 당연한 걸 해준 적이 별로 없기 때문에 죄책감도 없다.


결국 돌아오는 죄책감과 후회는 아빠의 몫이 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빠가 포기한 우리 가족과의 관계가 아빠가 갖고 싶고, 함께하고 싶고, 보고 싶은 우리 아이들과의 관계 또한 포함된 것이라는 걸 깨달아야 한다.


이미 우리 아이들에게는 외할아버지는 없어왔다. 알지 못하는 존재인데, 굳이 보여줘서 혼란을 주고 싶지 않았다. 핏줄이기에 당연한 것은 없다는 걸, 혈연이기에 더욱 서로 노력해야 한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채무가 끝나니 연락할 일이 사라졌다.


아빠도 서운한 게 있다고 나에게 말하기 어렵겠지만, 사실 듣고 싶지도 않다. 내가 서운할 때 아빠는 들어줄 마음이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모든 것에는 결국 인과관계가 있다. 혈연도 다르지 않다.


엄마이기에 나에게 당연한 것은 없다. 엄마는 엄마의 입장에서 늘 최선을 다하고 있을 뿐, 그리고 나는 그걸 느끼고 감사의 마음을 품고 살아갈 뿐이다.


아이들에게도 엄마여서 당연하게 여기는 존재이기는 싫다. 끊어지기 싫은 관계이기 때문에, 서로 존중하고 조심하도록 늘 새기는 엄마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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