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에 실패한 취준생도 행복할 수 있을까 1
26. 취업을 하지 못한 채 대학을 졸업한 나의 이야기
본래 이 글은 방향성이 확실했다. 하지만 내 삶은 글이 아니었다.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급하게 글의 제목을 바꿨다. 원래는 '취준생에서 신입사원~'으로 시작했던 자신감 넘치는 제목이었다. 제목을 바꾸는 건 어렵지 않았다. 짧은 시간 안에 사람을 보고, 합격과 불합격을 판단하는 것만큼의 난이도였으리라.
난 취업에 실패했다. 전혀 행복하지 않다. 실패에 따른 좌절감은 보통 올라간 높이에 비례한다. 강남과 종각을 여러 번 오가며, 총 2곳의 회사에서 최종 면접까지 봤다. 이후 이런 생각만 했다. "둘 다 붙으면 어디를 가야 하지?"
취업에 실패한 사람들의 유형은 다양하다. 서류에서 떨어지거나, 인적성 시험에서 떨어지거나, 1차 인성면접, 2차 실무면접, 3차 최종 면접까지, 그 지점은 다르지만 마주하는 결과는 같다. '불합격'. 최종 면접에서 동시에 떨어지면, 떨어졌다는 사실 그 자체보다 더 무서운 문제가 주어진다. "난 도대체 왜 떨어졌지?"
문제의 원인을 모른 채, 같은 도전을 해야 하는 상황은 막막하기만 하다. 막막함은 먹먹함으로 바뀐다. 왜 항상 내 인생에는 이런 굴곡과 지체의 시간이 있어야 하는지. 좋지 않은 일은 왜 한꺼번에 일어나는지를 하소연할 데가 없어서, 천 원짜리 몇 개를 들고, 코인 노래방으로 향한다.
조그만 공간에서 지난날을 되돌아본다. 음이 있는 가사에는 삶이 있었다. 짧은 마디들이 내 인생 마디마디에 엉겨 붙을 때면 벅차오르는 감정을 화풀이하듯 마이크에 쏟아냈다. "괜찮다, 할 수 있다. 고생했다. 잠시 쉬어라"와 같은 소중한 사람들의 조언을 받아들이면, 너무나 약한 사람이 될까 봐, 좌절을 딛고 성공한 사람들이 쏟아낸 랩 가사들을 주문처럼 외우며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다.
반성한다. 나는 실패했다. 결과가 그렇다. 삶에는 공백이 없다. 이것 또한 내 삶의 한 페이지가 될 것이다. 이 글은 감정의 배출구다. 슬프거나 비극적인 일이 생길 때만큼은 마치 내가 비운의 주인공인 마냥 행동하는 내 모습은 나약함 그 자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아무 데나 갖다 붙이기 딱 좋은 유명한 책 제목은 여기저기서 원인을 찾아, 지금 내가 마주한 현실을 어떻게든 해석해보려는 절박함과 동의어이기도 하다.
혹자는 왜 실패한 경험을 이렇게 공개하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건 내가 취준에 실패했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화가 난다. 그 화는 온전히 내게 향한다. 내 능력이 부족하고, 나를 평가하던 사람과 맞지 않는 내 모습을 누구의 탓으로 돌릴 수 있겠는가. 가학이 미덕인 사회에서 나는 아름다운 패배자가 되기로 했다.
'아름답다'에서 '아름'은 '알다'라는 단어에서 유래했다. 즉, 아름다운 사람은 제대로 아는 사람이다. 진정으로 아름다운 사람은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을 타인에게 '알리는' 사람이다. 그래서 다음 글은 나를 포함한 하반기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을 위한 글이 될 것이다. 실패한 사람이 무슨 팁을 줄 수 있을까 싶다가도, 결국엔 성공하리라는 믿음으로 글을 써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