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D ONE Jul 28. 2020

[밑줄독서] 김연수 -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24. 너를 생각하는 건 나의 일이었다

항상 연필로 밑줄을 그으며 책을 읽는다. 밑줄은 세상과의 만남이다. 밑줄을 긋는 행위는 본인이 어떻게 세상을 보는지에 대한 '인식'의 영역에 속한다. 책을 다 읽은 후 다시 한번 밑줄을 보며, 그때의 생각과 느낌을 반추하는 행위의 반복은 곧 자신만의 '의식'이 된다. 이러한 연유로 밑줄 긋기는 나만의 독서 의식이 되었고, 밑줄은 세상과 나를 잇는 선으로써 'MEETJUL'이 되었다.
이야기는 어떻게 시작하는가?
윤곽만 남기고 부재하는 누군가를 
상상하면서부터다.

지나간 과거를 잊고자 떠났던 여행지에서 이 책을 집은 건 필연이었다. 실연이 필연이었던 것처럼.

함께하던 사람이 곁에 있지 않아도 책은 남아 가끔은 아련해질 수 있다는 것, 그 순간부터 심연은 깊어진다.


20대는 사랑이 외롭다. 사랑에 대해 너무 복잡하게 생각했던 것일까? 돌이켜 보면 과분했다. 그 과분함이 실연 앞에 놓인 심연이었을 것이다. 심연은 깊은 연못 속에 비친 내 모습과 같다. 심연을 바라볼수록 그 심연이 다시 나를 바라보는 느낌이 드는 이유일 것이다.


마음을 끝까지 들어봐야 자신의 심연이 보이는 것처럼, 상대방의 마음을 끝까지 봐야 진심이 보이는 것처럼, 이 책은 끝까지 봐야 한다. 제목이 풍기는 로맨틱한 분위기에 빠져 몇 장 펼치다 '내가 예상한 내용이랑은 좀 다른데?' 고 생각이 들 때쯤 책을 덮어버리는 불상사로 인해 작가의 심연을 놓치는 것만큼 안타까운 일도 없기 때문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심연이 존재한다. 깊고 어둡고 서늘한 심연이다. 여러 번 그 심연 앞에서 주춤거렸다. 심연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서로에게 건너갈 수 없다."

나를 혼잣말하는 고독한 사람으로 만드는 게 바로 그 심연이다. 심연에서, 거기서, 건너가지 못한 채, 그럼에도 뭔가 말할 때 가닿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심연 저편의 당신을 향해 말을 걸 때, 그때 내 소설이 시작됐다.

나의 말들은 심연 속으로 떨어진다. 그래서 나는 다시 써야만 한다. 깊고 어두운 심연이, 심연으로 떨어진 무수한 나의 말들이 나를 소설가로 만든다. 심연이야말로 나의 숨은 힘이다.

가끔, 설명하기 곤란하지만 나의 말들이 심연을 건너 당신에게 가닿는 경우가 있다. 소설가는 그런 식으로 신비를 체험한다. 마찬가지로 살아가면서 우리는 신비를 체험한다. 두 사람이 서로 손을 맞잡을 때, 어둠 속에서 포옹할 때, 두 개의 빛이 만나 하나의 빛 속으로 완전히 사라지듯이.

희망은 날개 달린 것, 심연을 건너가는 것, 우리가 두 손을 맞잡거나 포옹하는 것, 혹은 당신이 내 소설을 읽는 것, 심연 속으로 떨어진 내 말들에 귀를 기울이는 것.

부디 내가 이 소설에서 쓰지 않은 이야기를 당신이 읽을 수 있기를.

모래에 스며드는 파도처럼, 시간의 퇴적과 풍화에 마음이 침식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글을 쓴다.


빈 잔은 채워지길, 노래는 불려지길, 편지는 읽혀지길


외로움이 사람을 약하게 만들기도 하나? 의아했다. 나는 늘 더 강해져야만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우리는 점의 인생을 살고 난 뒤에 그걸 선의 인생으로 회상한다.
우리 시대에는 고독이 외롭다.
고독해지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는 우리로서 행동했지만, 그 우리 안에서 각자는 저마다 고독했다.
모든 균열은 붕괴보다 앞선다, 하지만 붕괴가 일어나야만 우리는 균열의 시점을 알 수 있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건 나의 일이었다. 너와 헤어진 뒤로 나는 단 하루도 너를 잊은 적이 없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밑줄독서] 알랭 드 보통 - 우리는 사랑일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