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D ONE Aug 11. 2020

[밑줄독서] 잉게보르크 바흐만 - 삼십세

25. 어른 같지 않은 서른

항상 연필로 밑줄을 그으며 책을 읽는다. 밑줄은 세상과의 만남이다. 밑줄을 긋는 행위는 본인이 어떻게 세상을 보는지에 대한 '인식'의 영역에 속한다. 책을 다 읽은 후 다시 한번 밑줄을 보며, 그때의 생각과 느낌을 반추하는 행위의 반복은 곧 자신만의 '의식'이 된다. 이러한 연유로 밑줄 긋기는 나만의 독서 의식이 되었고, 밑줄은 세상과 나를 잇는 선으로써 'MEETJUL'이 되었다.
30세에 접어들었다고 해서 어느 누구도 그를 보고 더 이상 젊지 않다고 말하지는 않으리라. 하지만 그 자신은 일신상에 아무런 변화를 찾아낼 수 없다 하더라도, 무엇인가 불안정하다고 느낀다. 스스로를 젊다고 내세우는 게 어색해진다.

젊음은 가능성이다. 무한의 가능성을 유한의 바다 위에 올려놓는 그 담대함이 젊음이다.

젊음은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다. 눈을 뜨면 무언가를 하고 싶어 두 발로 서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다.


두 발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눈을 감으면 무언가를 잊고 싶어 쉽게 잠에 들지 못한 채 젊음은 조금씩 사라진다.

자기 앞에 놓인 가능성에 벅차오르던 순간은 이제 오지 않는다.  앞에 보이는 구름처럼 자유롭고 싶은 정도.

젊음은 그렇게 하늘 위로 제각각의 모양으로 흐른다.


아, 나의 젊음, 나는 다르겠지라며 살아온 정답 사회의 길. 좋은 고등학교와 대학교 그리고 대기업으로 이어진 젊은 날의 초상. What is all about the portrait? What my youth had been pursuing for?  Moon is waxing and waning. 달은, 차고, 이지러진다.


기억의 그물을 던진다. 낡고 닳았지만 기억이 도망가지 못할 만큼의 헐거움으로 나를 감싼다. 가능성을 잡기 위한 그물. 어쩌면 나를 옥죄던 족쇄는 아니였을까. 가능성은 희망이자 절망의 또 다른 이름이다. 사상과 감정을 그대로 품은 동면, 입술은 침묵한다.


치열한 고민과 투철한 사고 정신 뒤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 여전히 명쾌한 결론 없다. 주식과 부동산을 얘기하며, 매출과 월급을 고민하는 인생이 그림자처럼 쫓아다닐 것이라는 확실한 미래를 불안정한 현실에서 어떻게 살면 좋을까?


우리의 젊음은 각각 개별적이다. 하지만, 30대 그 숫자가 가지는 상징성만큼은 동세대적이다. 젊지만 더 이상 젊어서는 안 될 것 같은 서른의 중력. 그럼에도 우리는 그 중력 덕분에 땅에 발을 딛고 걷는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찬란한 미래의 거름이 되는 그날까지 걸을 것이다.

  

 "곧 30세가 된다. 서른 번째의 생일이 올 것이다. 하지만 종을 울려 그날을 고지하는 자는 아무도 없으리라. 아니 그날은 새삼스레 오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벌써 있다. 그가 안간힘 쓰며 간신히 버텨온 이 1년간의 하루하루 속에 스며들어 있다. 내 그대에게 말하노니 - 일어서서 걸어라. 그대의 뼈는 결코 부러지지 않았으니"


그는 기억의 그물을 던진다. 자신을 향해 그물을 덮어씌워 스스로를 끌어올린다. 어부인 동시에 어획물이 되어 그는 과거의 자신이 무엇이었던가를, 자신이 무엇이 되어 있었나를 보기 위해, 시간의 문턱, 장소의 문턱에다 그물을 던진다.
그는 자신을 위한 숱한 가능성을 보아왔고, 이를테면 자신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믿었다 - 위대한 남자, 등대의 한 줄기 빛, 철학적인 정신의 소유자.
천한 가지의 가능성 중 천의 가능성은 이미 사라지고 시기를 놓쳤다는 - 혹은 자기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가능성은 단 하나뿐이고 나머지 천은 놓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여행을 한다기보다, 떠나버려야만 하는 것이다. 이 해를 맞아 그는 자유로워져야만 한다.
그는 어디를 가나 영원히 자유스러울 수 없으리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없으리라. 아니 그럴 수는 없다. 그는 기다린다.
나는 절망 속에서 그릇된 조언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나는 분명한 통찰 덕으로 한층 그릇된 조언을 받고 있다.
 8월! 찌는 듯한 나날이었다. 대장간에서 달구어진 쇠붙이 같은 나날, 시간은 신음했다.
금빛의 9월, 타인이 나에 대해 품고 있는 모든 환상을 털어내 버린다면, 나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구름이 저처럼 흐리는 것이라면 나는 대체 누구일까!
그가 서른 살로 접어드는 겨울이 다가올 때, 얼음의 고리가 동짓달과 섣달을 묶으며 그의 마음을 동결시킬 때, 그는 고뇌를 베고 잠이 든다. 그는 잠 속으로 도피하여 결국 각성으로 되돌아온다. 머물면서 여행을 하면서 그는 도피한다.
인간은 자유를 사랑하지 않는다. 자유가 모습을 드러내면 어김없이 인간은 그 자유와 더불어 스스로를 아무렇게나 내던져왔다.


매거진의 이전글 [밑줄독서] 김연수 -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