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개기일식을 닮은 사랑 또는 여행
너의 이름을 머금고 책을 읽는 여름 제주의 오후.
카페의 분위기는 나의 기후가 되었다.
바다가 파도를 토해내듯 이제는 너에 관한 생각들을
다 뱉어내고 싶은데, 그게 쉽지 않다.
그건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 마음속 깊은 곳까지 스며들었기 때문은 아닐까?
항상 연필로 밑줄을 그으며 책을 읽는다. 밑줄은 세상과의 만남이다. 밑줄을 긋는 행위는 본인이 어떻게 세상을 보는지에 대한 '인식'의 영역에 속한다. 책을 다 읽은 후 다시 한번 밑줄을 보며, 그때의 생각과 느낌을 반추하는 행위의 반복은 곧 자신만의 '의식'이 된다. 이러한 연유로 밑줄 긋기는 나만의 독서 의식이 되었고, 밑줄은 세상과 나를 잇는 선으로써 'MEETJUL'이 되었다.
마음에 드는 문장을 만나면 밑줄을 긋고 두세 번 소리 내어 읽곤 했다. 가끔 까닭 모르게 울컥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오래도록 방 안을 서성였다.
스스로를 끌어안는 방법은 많다. 그 방법이 내게는 여행이다.
새로운 것을 향해 자기가 이렇게 마음을 활짝 여는 곳은 그 어디에도 없다고.
우리의 사랑은 일치하지 않았다. 나의 사랑과 당신의 사랑은 일치하지 않았다.
누군가를 잃어서 슬픈 것은 그 사람 앞에서만 가능했던 나의 모습으로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다는 외로움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사랑을 해야 하고 여행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은, 여행은, 우리 인생에 1을 더해 더 큰 수를 만드는 일,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흐르는 물을 보면서 변기에 앉아 여행이란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생각했다. 집의 안락함을 기꺼이 버리고 낯선 땅으로 날아와 집을 떠나지 않았다면 애초에 잃지 않았을 안락함을 되찾기 위해 엄청난 시간과 돈을 쓰면서 덧없는 노력을 하는 게 여행이 아닌가 하고.
그래도 전 사랑이 현대 생활의 가장 큰 불행, 즉 권태로부터 우릴 지켜준다고 믿고 있습니다. 사랑은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모험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