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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 ONE Dec 05. 2022

[회사 제대로 그만두고 싶은] ENTJ의 쫄지 않는 법

셀프의 역설, 인생은 셀프가 아니에요

물은 셀프입니다. 인생도 셀프일까요?

물은 셀프니까 인생도 셀프로 살아야지 생각하면 사회에서 물 먹기 십상이다. 이건 무슨 말인고 하니, 회사에서 시키는 일 스스로 잘 해내고 선배 직원들에게 업무 관련 질문하는 것도 괜히 방해하는 것일까 싶어서 전전긍긍하다가 완곡어법과 미사여구를 동원한 미괄식 문장으로 우리는 "정말 죄송하지만 혹시 ~을 알 수 있을까요?"와 같은 세상 그 누구보다 정중한 척하며 뒤에서는 '나 왜 이렇게까지 일하고 있냐' 하며 셀프디스를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 그것이 이 험난한 세상에서 복세편살의 정신으로 땅 짚고 헤엄치기 위한 수영법이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셀프(self)로 가득 찬 시대에 살고 있다. 자기 인생은 자기가 설계해야 한다는 시대 담론. 인생 선배의 경험과 지식을 타인에게 전달하는 모든 행위가 '꼰대'로 둔갑되는 풍요로운 꼰대의 시대. 더 이상 나 이외의 타인과의 접촉은 싫다며, 퇴근 후 오직 나와 나의 행위로써만 반응하는 키오스크가 앞에서 음식 먹기에 앞서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기계 앞에서 가끔은 무기력함을 느끼기도 한다. 셀프로 가득 찬 시대에 도대체 MYSELF는 어디 있는 것인가?  


하지만 이와 동시에 셀프가 점점 희미해져 가는 시대에 살고 있다. 언론에서 말하는 MZ는 한없이 본인의 개성과 자기주장이 강한데, 회사만 오면 본인의 평소 자아는 나의 은밀한 비밀까지 알고 있는 방 한 칸에 고이 접어두고 나온다. 버스와 지하철을 타기 위해 요즘은 버스카드 대신 마스크를 쓰는 것이 일종의 통과의례가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자신의 페르소나도 갈아 끼운다. 시대가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어딘가에서는 누군가의 비속어와 고함, 인격 모독 등이 자행되는 근로의 환경이라는 것은 참으로 셀프리스하다 못해 헬프리스(helpless) 하다. 이때 놀라운 사실은 자아(self)가 상실된 그곳에선 Selfish 하지 못하면 여기서 살아남지 못하는 것인가? - 생각한다는 것이다. 자아를 잃은 이기적인 무자아들의 집합 - 이것이야말로 무아지경에 이른 대한민국 근로 현장의 한 모습이다.


회사에 들어왔는데 스스로 성장하라고 한다. 회사가 학교냐고 묻는다. 질문의 형태를 띠고 있는 비난은 비단 근무시간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술자리에서도 일을 잘하라고 다그친다. (그들의 입장에선 당연히 조언이었을 것이다) 그러다 본인들이 일을 잘했던 전성기 시절을 안주 삼아 잔을 부딪히는 속도가 빨라졌다. 본인의 감정만 추스르지 못하는 줄 알았더니, 여전히 자기가 젊은 줄 알고 술 털어 넣는 속도도 조절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용기 내어 '선약으로 인해 당일에 잡힌 회식 참석은 부득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라는 답변을 하는 순간 단톡방에는 마치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오늘 술자리에서 OOO 얘기가 나왔다더라 ~ '라는 간접화법으로 전하며 이제는 말하는 주체도 사라지는 셀프 부재의 시대가 되어버렸다는 소식도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라는 곳이 영화배우 마동석이 나와 미간에 인상 찌푸리며 주먹 한 대 휘둘러야 할 것만 같은 사람들만 모인 장소는 결코 아니다. 타인의 성장을 지원하고, 본인이 알고 있는 내용을 생색내지 않고 인수인계를 하거나 도움이 필요한 순간 먼저 손을 내미는 사람도 있다. 아니 그들은 사실 사람이 아니다. 천사다. 만약 당신의 주변에 로스앤젤레스 출신일 것만 같은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커피 한잔 같이 하고 싶다고 말하자. 그것조차 부담스러우면 어디 자판기에서 비타500 하나 뽑아서 주면 되겠다. (아,요즘은 올드한 비타500 보다 전현무의 잔망스러운 춤이 떠오르는 오로나민-C가 좀 더 MZ세대스러울지도 모르겠다.)


꼬르륵 소리가 난다. 언제 먹었냐는 듯 내일의 출근을 위해 오늘 밤 함께 했던 나의 전투 식량은 위와 장을 거치며 마치 위장막을 두른 군인처럼 각개전투 포복 중이다. 우리는 왜 우리의 인생을 위해 돈을 벌고자 하는데, 정작 우리의 원래 본모습을 드러내지 못하면서 살아가게 되는 것일까? 아주 포복절도할 노릇이다. 가끔은 그냥 회사에서 배꼽 잡고 쓰러지고 싶다. '혹시라도 또라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보다 더욱 신박한 또라이가 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는 본인의 모습이 화면이 켜지지 않은 모니터의 어둠 속에서 비치는 순간 영정사진 같다고 느낀다. 진짜 나는 죽어가고 있구나. 살려낼 수 있는 방법은 회사를 그만두는 것밖에 없구나. 근데 회사를 그만두면 먹고 살 방법이 마땅치 않구나.


꼬르륵 소리가 난다. 다시 들어보니 소리가 약간 달랐다. 또르륵 소리가 났다.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흐른다. 제 갈 길 잘 가고 있던 눈물 한 방울이 입술에 닿는다. 짜다. 인생의 쓴맛에 짠맛까지 더해지니 달달구리가 땡기지 않을 수 없다. 갑자기 화가 난다. 이런 순간에도 나란 녀석은 달달구리 메뉴보다 '이중 부정은 간결한 보고서 작성에 좋지 않아요' -라고 말한 그 선임의 무뚝뚝한 피드백이 생각나는 것일까. 그래도 시킬 건 시킨다. 교촌 허니콤보와 엽떡 국물 떡볶이 조합으로 눈물로 얼룩진 나의 얼굴을 땀과 기름으로 덮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꼬르륵 소리와 또르륵 소리가 결코 다른 소리가 아니었던 것이다.


여기까지 읽어 내려오면서 본인의 이야기 같다고 느낀 분들이라면 기대하시라, 쥐뿔도 없는 필자가 '혹시 너 백 있니?', '혹시 집이 잘 사니?'와 같은 답을 들으며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지 그 노하우에 관하여 간략히 공유하고자 한다. 월요일엔 쫄아도 회사에서는 사람에게 쫄지 말자. 업무로 쪼이는 것도 서러운데 쫄기까지 하면 쭈글쭈글한 주름만이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을 테니 말이다. 구김살 가득한 회사 인간들에게 꼭 필요한 스팀다리미와 같은 방법은 아닐지라도, 최소한의 할 말은 하면서 살아야 될 것 아니겠는가?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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