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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 ONE Jan 30. 2023

[밑줄독서] 김훈 - 밥벌이의 지겨움

월요일 아침에는 똥을 싸며 브런치 글을 읽는 게 좋겠다.

나의 똥은 먹이사슬에서
제외되지 않기 위하여
먹이사슬의 하층부로 스스로
 기어들어간 자의 똥이다.
<김훈 - 연필로 쓰기 中>

항상 연필로 밑줄을 그으며 책을 읽는다. 밑줄은 세상과의 만남이다. 밑줄을 긋는 행위는 본인이 어떻게 세상을 보는지에 대한 '인식'의 영역에 속한다. 책을 다 읽은 후 다시 한번 밑줄을 보며, 그때의 생각과 느낌을 반추하는 행위의 반복은 곧 자신만의 '의식'이 된다. 이러한 연유로 밑줄 긋기는 나만의 독서 의식이 되었고, 밑줄은 세상과 나를 잇는 선으로써 'MEETJUL'이 되었다.

월요일 아침에는 반드시 회사에서 똥을 싸야  것만 같다. 그래야만 일에서 똥을 싸지 않을 것만 같다. 상쾌한 기분으로 월요일에 출근한 적이 도대체 언제였던가.


자율 출퇴근 제도 덕분에 출근 시간을 정하지는 않지만 가끔은 이게 스스로 독이   같기도 하다. 현재 하는 일이 단순히 밥벌이라고만 여기는 생활도 이제 5 차에 접어드니 이제는 일이 지겹다기보다는 매번 퇴사를 꿈꾸면서도 대기업 직장인 생활을 지속하고 있는  자신에게 지겨움을 느낄 때가 있다.


그렇다. 이렇게 생각이 부정적으로 흐를 때면 해우소로 향해야 한다. 똥을 싼다는  걱정을 비우는 행위다.


김훈. 그의 문체가 좋다. 오죽했으면 영어스피킹 예상 단골 질문인 취미와 좋아하는   이유에 '김훈' 정해놓고 그의 작품을 영어로는 어떻게 표현했는지 찾아볼 정도였다.


개인적으로 칼의 노래와 같은 소설보다는 본인의 인생관이 지극히 담긴 자전거 여행이나 연필로 쓰기, 라면을 끓이며 그리고 밥벌이의 지겨움과 같은 산문집이 좋다. 단문으로 단숨에 독자의 감탄을 자아내는  문장에는 얼마나 많은 지우개들이 필요했을까? (그는 연필로 원고를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밥벌이도 힘들지만,
벌어놓은 밥을 넘기기도
그에 못지않게 힘들다.
이것을 벌기 위하여 이것을
넘길 수가 없도록 몸을 부려야 한다면
대체 나는 왜 이것을 이토록
필사적으로 벌어야 하는가.
<김훈 - 밥벌이의 지겨움 中>

하루에 쓰는  1 원을 넘기지 않기 위해 대중교통+저녁 식재료 또는 3  장을 보면 그걸 3일로 나눠서 하루에 얼마를 쓰는지 계산한다. 이런 나의 찌질한 처절함이 스스로도 지겨운 순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멈출  없다.


적당히 애매하게 버는  기업의 그렇지 않은 직장인은 정부 정책의 지원대상에서 모두 비껴가는  억울해서라도 악착같이 살아서 부자 되야겠다. 시작한 순간 멈출  없다. 우리가 어쩔  없이 지겹지만 일을 하고 밥벌이를 하는 것처럼.


월요일엔 김훈의 <밥벌이의 지겨움> 필요하다. 밥을 먹고살기 위해서 몸을 버리는 사람들이 많은 현대인의 비극에  어울리는  제목이다. 그렇다고  <밥벌이의 지겨움> 대해서만 얘기하지 않는다. 지겨운  속에서도 희망을 찾으려는 지독히도 현실적이지만 이상주의적인 시선이 엿보이는 산문집에 가깝다고나 할까? 그가 바라보는 세상과 나의 시선이 만나 밑줄이 되었던 문장을 공유하며...


이제, 시간에 저항할 시간이 없고, 시간을 앞지를 기력이 없다. 늙으니까 두 가지 운명이 확실히 보인다. 세상의 아름다움이 벼락 치듯 눈에 들어오고, 봄이 가고 또 밤이 오듯이 자연현상으로 다가오는 죽음이 보인다.
나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말할 때 세상의 더러움에 치가 떨렸고, 세상의 더러움을 말할 때는 세상의 아름다움이 아까워서 가슴 아팠다.
나는 일이라면 딱 질색이다. 일은 나를 나 자신으로부터 소외시키기 때문이다.
밥벌이도 힘들지만, 벌어놓은 밥을 넘기기도 그에 못지않게 힘들다. (중략) 이것을 벌기 위하여 이것을 넘길 수가 없도록 몸을 부려야 한다면 대체 나는 왜 이것을 이토록 필사적으로 벌어야 하는가.
밥 쪽으로 끌려가야만 또다시 밥을 벌 수가 있다. 그러나 우리들의 목표는 끝끝내 밥벌이가 아니다.
길은 명사라기보다는 동사에 가깝다.
산은 삶을 쇄신하려는 자들의 열망으로 솟아있다.
겨울의 바람은 사람을 낮게 움츠리게 하지만, 가을의 바람은 사람의 마음을 이 세상과 마주 서게 한다.
밥은 누구나 다 먹어야 하는 것이지만, 제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밥만이 각자의 고픈 배를 채울 수 있다. 밥은 개별적이면서도 보편적이다.
인간이 고통스러운 것은 그 세계와 인간 사이에 어떤 관계를 만들지 않고는 살아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희망이나 전망이 없이도 살아야 되는 게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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