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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 ONE Mar 29. 2023

도쿄의 봄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분홍

도쿄엔 너라는 계절이 곧 봄이었다

또다시 슬럼프가 찾아왔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은 글을 써야지 마음먹었었는데 일이 바쁘다는 핑계도 이제는 그만할 때가 되었는데 말입니다. 언제나 당연하듯이 슬럼프가 찾아오는 것처럼 다시 벚꽃의 계절인 봄이 왔습니다,


정확히 열흘 전에는 도쿄에 있었습니다. 소중한 사람과 떠난 해외여행에서는 글을 쓰기보다는 사진을 찍고 행복한 순간을 서로 이야기하기 바빴으며 일상에서는 잘 나누기 어려웠던 속 깊은 얘기도 했습니다. 그게 여행의 진정한 묘미는 아닐지 생각합니다.


도쿄 나리타에서 인천국제공항을 향하는 비행기에서 여행을 되돌아봤습니다. 혼자가 아닌 여행에서 글을 쓰는 건 익숙지 않았습니다. 혼자일 때 마주했던 생각과 감정의 연결고리에 한 문장씩 이어나가는 게 나름대로 고독함을 즐기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가라앉는 감정의 표면 위에 떠다니듯이 글을 쓰다 보면 여행지의 장소들은 어느새 필름 사진처럼 변하면서 시적 순간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한 순간들은 생생했다기보다는 생명력을 필요로 하는 것들에 가까웠습니다.


스스로의 앉은키가 얼마나 큰지 체감할 수 있는 등받이 고정석에서 여행을 되돌아봤습니다. 기체가 이륙하는 순간에 추진력을 받아 표류하는 생각의 떠오름을 베개 삼아.


#2023.03.19 

새로운 공간을 함께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의 시간이 필요했다. 비행기가 안정적인 이륙을 위해 길고 긴 활주로를 필요로 하는 것처럼 말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비행 스케줄을 맞추기 위해 활주로는 직선뿐만 아니라 곡선을 필요로 했다. 우리의 인생이 언제나 올곧게 뻗어나갈 수 없는 것처럼.


지금의 여행은 새로운 여행을 기약할 때 비로소 그 의미가 진해진다. 여행의 의미가 진해진다는 것, 그것은 오랜 시간  끓인 라멘의 육수와 같이 손님에게 전달되기까지 수많은 시간이 담겨있어야 했었던 것처럼. 현재의 여행을 위해 항공권을 예약하고 숙소를 알아보고 계획을 세웠던 그 모든 시간의 깊이가 생기는 순간. 그 순간이 타지에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이륙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일 것이다.


물론 이때의 감각은 여행지에서만 느낄 수 있는 이국적인 생경함이라기보다는 익숙한 새로움에 가깝다. 한국어 소리가 곳곳에서 들리면서 '이제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는 느낌'은 묘한 안정감과 아쉬움을 동시에 주는 순간이기도 하다. 언제 그랬냐는듯 나리타 공항에서 스카이라이너를 타고 우에노역에 도착하기까지. 새로운 곳을 빨리 돌아보고 싶은 기대와 갈망이 흩날리는 벚꽃 잎처럼 바람 타고 사라지니 3월의 도쿄는 가장 빠른 분홍이었다.


여행을 향으로 기억하기로 했다. 향수(nostalgia)를 위한 향수랄까? 너와 함께한 23년 도쿄의 봄은 불맛이 나는 소유(간장)의 향과 푹 고와놓은 미소(된장) 그리고 묘한 웃음을 짓게 하는 시트러스가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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