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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 ONE Mar 03. 2024

거세된 남성성과 결혼하지 못하는 남자들

5. 영웅이 되지 못하는 남자는 결혼을 꿈꾸지 못하는 사회

초식과 절식 그리고
 자발적 남성성의 거세는
그 남자가 할 수 있는 가장 최고의
거친 행동이었을지도 모른다

23년 4분기 합계출산율 0.6명대 진입과 결혼하지 않는 청년층 미혼남녀. 가난을 재생산하지 않겠다는 MZ세대의 의지라느니,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보다 출산율이 낮다느니 언론의 헤드라인 장식용이 아니라 미디어에서 언급하기를 꺼리는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당신이 결혼을 하기 어려운 이유. 당신이 남자든 여자든 결혼을 결심하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지금 우리 한국 사회에서는 남성성이 거세되었기 때문입니다. 더욱 놀라운 점은 남성 스스로가 남성성을 포기했다는 것이죠. 필자가 말하는 거세된 남성성은 단순 마초이즘이 아닌 [책임감] 그리고 여성의 모순까지도 허용할 수 있는 [대인배적 기질]입니다. 결혼하지 않는 남자들이 자발적 남성성의 거세를 선택했다고 언론에서는 말할 수 없습니다. 흔히 말하는 매스 미디어는 이미 여성중심적인 문화 또는 주요 시청자인 여성의 판타지 충족을 위해 여성 맞춤형 남성상을 전시하는 데 익숙해졌기 때문이죠.


누구도 몰랐을 것입니다. 대중문화에 전시된 다루기 쉬운 남성. 여성에게 인기 있는 남성. 귀여운 남성. 거칠지 않은 남성 이미지의 확산과 일반화가 정작 많은 여성들에게 새로운 모순을 주었다는 점을 말이죠. 결혼을 앞둔 여성들이 "요즘은 남자다운 남자가 없다. 나를 지켜주고 책임질 수 있는 남자를 찾기 어렵다."라고 한탄 아닌 한탄을 하는 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스스로 남성성을 거세한 남자들의 잘못도 아닙니다. 여성의 관심과 호감이라는 인정이 좋았을 테니 말입니다. 그렇게 남성성의 거세는 30대 미혼률 50%라는 수치와 함께 거세게 다가왔습니다.


1. 무한한 책임감을 가질 수 없는 남자들

 - 여성의 지속적인 사회 진출에 따라 돈벌이가 비슷해지니 여성에게 얼마나 성적으로 어필하느냐가 남성성을 규정하는 큰 축이 되었습니다. 다만, 남성성이 여성에 의해 규정되는 순간 본질적으로 그것은 남성성이 아니게 되는 것입니다. 여성이 여성스러움을 남자에 의해 규정받는 것을 편견에서 비롯된 차별 행위로 여기듯이 그 반대의 현상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합니다만 현실은 그렇지 않죠.


- 흔히들 쇠락하는 경제에서 남성은 초식화 된다고 합니다. 동아시아 3국 모두 비슷한 현상을 보이는데, 장기 불황 국면에 접어든 한국에서도 남성의 초식화 그리고 절식화 현상은 불가피해 보입니다. 그리고 나아지지도 않을 것 같구요. 왜냐하면 요즘 남자들은 영악해져서 남성성을 스스로 거세함으로써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최고로 남자다운 일을 선택하기 때문입니다.


- 요즘은 서로가 서로 책임지고 싶지 않기 때문에 깊은 관계가 시작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책임의 전가도 아니요, 책임의 부재도 아니요 오직 각자의 공평무사한 선택에서 비롯된 무책임한 결과일 뿐이지요. 각자가 50:50으로 공평하게 부담하고 각자의 몫만큼 하는 관계에서는 왜 "책임"이라는 것이 생기지 않을까요?

 

왜냐하면 본질적으로 책임이라는 녀석은 불균형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과거 여성의 사회진출이 제한되던 시절에 발생한 경제적 능력의 불균형이 (일반적으로) 남자와 여자 각각의 영역에서 "책임감"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조직에서도 권력과 권한이 있는 사람이 많은 책임감을 갖는 것이 일반적이었죠. 하지만 요즘엔 어떠한가요. 수평적인 관계가 대세라서 아무도 책임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직장에서도 (이상적으로 보이는) 관계의 평등화는 역설적으로 "책임감"을 희미해지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젠더갈등에 지친 남녀 각각이 각기 공정한 선택을 무한히 추구하면 문제가 없는 것 아니냐고.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몫만 하면 되는 할당 방식의 사랑으로 책임이라는 리스크를 없애면 되는 게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2. 모순적인 대인배보다 공평한 쪼잔함을 선택한 남자들

- 돈벌이 능력으로 남성성을 증명할 수 없는 현재의 남자들은 자신을 가꾸고 돋보이게 함으로써 남성성을 증명하기 위해서 발악합니다. 화장을 하고, 여성 마음을 헤아릴 줄 알고 MBTI에서는 F의 성향을 지녀야 소시오패스 소리 듣지 않는 달콤한 남자가 될 수 있는 것이지요. (물론 이런 모습을 한 사람의 진정한 매력으로 받아들이고, 경제력과 무관하게 평생 백년해로 할 수 있다는 마음이 생길 수 있다면 참으로 다행입니다)


그러나, 여자에게 선택받기 위한 수동의 존재로서 남성성을 가꿀수록 모순은 악화될 것입니다. 결혼을 앞둔 여자들은 "높은 책임감과 가족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생존력 높은 아빠 같은 오빠"를 바랄 가능성이 여전히 높으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여생"이라는 경험되지 않고, 증명될 수 없는 미래라는 불확실에 대한 리스크 회피를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자신의 경험으로 회귀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남자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배우자에게서 바람직한 어머니의 모습을 투영합니다)


- 다만 요즘의 남성들은 자신의 아버지 세대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여성은 보호해야 하는 존재가 아닌 경쟁과 쟁취의 대상으로 여기고 평생을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일생의 경험에서 "쪼잔함"이라는 모순이 생깁니다. "왜 여자들은 남자와 동일한 권리와 공평함을 바라면서, 무엇인가를 "책임져야 하는 순간"에는 어쩔 수 없이 타인에게 의존할 수 있는 사람을 찾으려고 하는 것일까? -라는 그 모순에서 요즘 남자들은 쪼잔하고 소심하고 무능력하게 보일지언정 그 누구보다 현명하고 자기 자신의 인생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당당한 쪼잔남의 길을 선택하는 것은 아닐지요.



내가 선택한 사람을 끝까지 지키겠다는 무한한 책임감을 바라는 행위가 사랑이 아니고 리스크가 되는 시대. 같은 90년대 남자들이 본인만의 남성성을 회복하고 평생을 함께할 여성을 만날 수 있기를. 남성성과 여성성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만은 그래도 우리 인생에 유일하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건 사랑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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