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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 ONE Feb 12. 2024

인간보다 캐릭터가 더 귀여운 이유

3.  Blurred gender shapes cuteness

귀엽다는 표현이 이제는 질려버렸다.

휴게소에서도 카카오톡 이모티콘 인형을 발견할 수 있는 세상. 귀여운 것들은 만연함을 넘어 망연자실하게 만듭니다. 어느새 우리 한국인들은 신생아를 위한 유모차보다 동물을 위한 유모차 구매를 더 많이 하는 민족이 되었고, 사람이 개보다 못한 존재, 고양이보다, 심지어 무생물인 캐릭터보다 못한 존재처럼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그놈의 귀여움이 무엇이길래, 도대체 캐릭터 인형 따위가 무엇이길래 선뜻 지불하기 어려운 가격에도 불구하고 귀엽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지갑을 열려고 할까요. 


캐릭터라는 녀석은 몸에 비해 큰 머리와 과장된 눈의 크기, 상대적으로 작은 손발이 자아내는 (신생아와 비슷한) 이미지는 인간의 보호본능을 자극함으로써 캐릭터를 '귀엽다고' 인식하도록 만드는 메커니즘을 갖고 있습니다. 

'Infant facial features serve as “innate releasing mechanisms” for instinctual caregiving behaviours' (By Konrad Lorenz)


우리가 동물 또는 캐릭터에 귀여움을 느끼는 또 다른 이유는  인간과 달리 탈성화된(desexualized) 존재로 인식한다는데 있습니다. 물론 동물이나 캐릭터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성별이 존재하지만, 실제로 그 이미지와 귀여움을 소비하는 사람들은 정작 대상의 성별을 모르거나, 관심이 없는 경우가 비일비재할 것입니다. 캐릭터가 갖는 성별의 모호함(Blurred gender)은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카카오톡 라이언 캐릭터가 김범수 의장을 본뜬 것이라는 걸 아는 순간부터, 해당 이모티콘에 대한 반감이 생겼습니다. 캐릭터에서 그가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남녀의 신체는 2차 성징 이후 두드러진 차이를 보입니다. 이는 서로를 다르게 인식하여 호감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기도 합니다. 하지만, 인간이 조물주가 되는 캐릭터의 경우, 굳이 성별을 특징짓는 않는 편이 귀여움을 얻는데 더욱 좋은 전략이 됩니다. 만약 캐릭터를 구분 짓는다고 하더라도 성별을 구분 지을 수 있는 가슴과 하체 등의 라인을 강조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Unpindownability’, as we might call it, that pervades cute, the erosion of borders between what used to be seen as distinct or discontinuous realms is also reflected in the blurred gender of many cute objects beyond dichotomous perception. <The power of cuteness 中>

뿐만 아니라, 캐릭터는 우리 사회의 중화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공기처럼 스며든 젠더 갈등과 혐오의 시대에서 남자는 남자라는 이유로, 여자는 여자라는 이유로 무시와 비하, 경멸과 살인의 대상까지 이어질 수 있는 요지경 세상에서 말이죠.


우리가 귀여운 것을 보고 자연스럽게 "귀여워~, 귀엽다~"라고 표현하는 이면에는 우리 사회에서 느끼는 피로함을 회피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습니다. 모든 것이 피로해진 사회에서 캐릭터는 그 본연의 정체성을 활용하여 이모티콘으로서 '감정 대리인' 역할을 수행하는 것도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입니다. 



캐릭터로 표현되는 행동의 모습들도 고정적인 성관념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흐릿한 성 경계를 바탕으로 한 남녀 공통의 특징을 담아냄으로써, 캐릭터는 남녀노소 모두에게 쉽게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이분법적인 경계를 가지고 있지 않은 캐릭터의 본질적 특성이야 말로, 귀여움이 우리 안방까지 침범하도록 만든 진짜 힘이며 권력은 아닐까요?


※ (개인적으로 이 글을 읽으신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굉장히 궁금합니다. 귀여움이 갖는 의미와 힘, 권력에 대한 얘기를 회사에서도 오랜 친구와의 술자리에서도 할 수 없는 이야기다 보니, 가끔은 혼자 극단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의심할 때가 많았던 주제이기도 했기 때문에, 편하게 덧글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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