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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 ONE Feb 18. 2024

배신하지 않는 반려동물의 권력

4. 애완동물을 반려 동물이라고 부르는 위선에 관하여

"요즘은 개의 지위가 높아져서, 개를 개라고 하면 무식쟁이 취급을 받고,
반려견이라고 해야 교양인 대접을 받는다.
김훈 - <연필로 쓰기 > 中

김훈 작가의 말처럼 요즘은 개를 개라 부르지 못하고, 반려견으로 불러야 하는 문화가 형성되었습니다. 비슷한 사례로 출산율이 아니라 출생률이라는 단어를 여성계에서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겠습니다.


다소 관련이 없어 보이는 두 가지 사례는 특정 단어 사용을 통해 (심리적 또는 물질적) 이득을 취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출산(産)을 생(生)으로 변경하는 것은 아이를 낳는 행위 주체를 모호하게 함으로써 여성의 심리적 부담을 경감시키고자 하는 것이지요. 일견 타당해 보이지만, 실제로 출산과 출생은 본질적으로 의미가 다릅니다. 왜냐하면, 출산율은 보통 1인당 합계 출산율을 의미하고, 출생률은 1년 간 태어난 인구수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즉, 출산이라는 개념을 출생으로 [특정 대상을 위해 특정을 목적을 갖고] 인위적으로 변경하는 행위에는 오류가 존재합니다. (오해를 방지하고자, 저출산은 우리 사회 공통의 문제이며, '여자가 애를 낳지 않아서 문제라는 식의 1차원적이고 시대착오적인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님을 말씀드립니다) 


그 오류가 인간에게만 국한되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귀엽고 사랑스러운 동물에게까지 오류가 이어졌습니다. 반려동물이라는 개념의 오류는 인간의 이기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 인간은 애완이 아닌 '반려'의 개념으로 일방적 사랑의 대상인 '동물'을 격상시켰습니다. 마치 동물들이 스스로 주인인 자신을 사랑하고, 장례까지 치러야 되는 대상인 것처럼 말이죠. 왜 그럴까요? 그건 인간 자신의 외로움을 숨기기 위해서입니다. (자신이 키우던 동물이 죽었다는 이유로 조의금을 요구하는 게 말이나 되는 세상입니까? 참으로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① 애완동물에서 반려동물이 되기까지

'애완견'이라는 용어가 익숙한 시절이 있었습니다. 일요일 아침에 SBS TV 동물 농장에서는 각양각색의 방식으로 주인의 사랑을 받는 존재들이 소개되었습니다. 애완을 한자 풀이하면 사랑 애(愛) 자에 희롱할 완(玩) 자인데, 이는 ‘가지고 논다는' 의미에서 '반려'라는 동반자 개념을 붙이자는 이유가 된 부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가지고 논다'라는 어감상 거부감을 제외하고, 실제 인간의 행태는 '반려'보다는 '애완'에 가깝습니다. 사람들이 애완동물을 찾는 이유 중 하나는 실제 인간과 달리 자신(주인)에게 완강히 거부하거나 심각한 갈등을 갖거나, 짜증 내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이미 한 존재의 시작이 '순응성'에서 비롯된 것이죠. 순응성의 본질은 결국 '귀여움'입니다. 본인에게 대들지 않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귀여운 표정과 앙증맞은 행위로 응답 보답하는 것.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서는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애완물을
 '반려자'의 지위까지로 극진한 대접을 하게 된 것일까요?

이와 관련하여, 건축가 유현준은 자신의 저서 <어디서 살 것인가>에서 재밌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인간은 지난 수십 년간 인간의 존엄성을 확보해 주었던 종교의 권위도 없앴다. 인간은 점점 동물과 동등해져가고 있다. 그래서 인간들은 동물이 된 자신들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동물의 존엄성을 높이고 있다는 이야기다.


인간에게는 새로운 관계 맺기가 필요했습니다. 동물은 스스로의 지위를 격상시킬 수 없습니다. 동물들은 집단 시위나 사회 운동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결국 인간은 스스로의 필요에 의해서 개념과 관계를 재정립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은 같은 인간에게 지쳐버렸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외로움은 만성적 질병이 되어 하나의 삶의 양식이 되어 버렸습니다. 신인류에게 필요한 것은 '갈등이 존재하지 않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인간의 역사에서 '갈등'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었습니다. 사람 간의 관계에선 내가 베푼 만큼 또는 기대한 만큼 피드백이 안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감정적 보상 측면에서 동물은 인간보다 확실히 낫습니다. 즉, 귀여운 동물들은 감정적으로 편한 존재인 것이죠. 귀여움은 편합니다. 편한 것만을 취하는 편식적인 관계 형성에 익숙한 현대인들은 이러한 모순을 인정하기 싫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애완동물이 아니라 '반려의 대상'으로 동물의 존재를 격상시킨 것이지요. 존재론적 개념의 편취. 이제 동물은 귀여운 생물에서 존재론적 현대인의 동반자가 되어버렸습니다.


② 반려동물,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는 현대인의 도피처

많은 사람들이 '반려동물'을 외로움의 도피처로 삼는 것 같습니다. 젊은 세대들에게 반려동물은 외로움을 변장한 사람들의 취향이자 라이프스타일이 되었죠. 귀여움은 외로움을 가리기 위한 수단입니다. 귀여운 동물의 매력이 스스로 강화되었다기보다는 개인의 불안과 사회의 불안정이 복합적으로 작용함에 따라 귀여움의 상대적 위상이 과대평가 되었습니다.


반려동물은 외로운 사람과 사람끼리 만나는 매개체가 되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소셜/데이팅 앱의 광고와 유저 프로필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프로필에 "외로워서 사람을 만나러 온 것이 아니라 반려동물 산책을 같이 할 수 있는 친구"를 구한다는 귀여운 멘트에 헛웃음이 나올 때가 있습니다. 애완동물을 빌미로 사람을 향한 외로움을 경감시킬 수 있다면 그것만큼 좋은 일도 없겠습니다만, 그런 행위에 '반려'라는 단어를 병치하는 무책임에 어안이 벙벙해질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 저는 동물을 기르고 사랑하는 일을 규탄하는 게 아닙니다. 동물의 지위가 반려자로 격상된 만큼 그들의 주인인 인간들이 그만큼의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인지 비판적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외로움을 홀로움으로 채울 수 없는 괴로움을 포장하려는 인간의 이율배반적 태도가 제게는 괴기하게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 괴기함의 원천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답을 찾았습니다. 인간과 동물의 가장 큰 차이점. 결국 먹고사는 문제를 고민하는 지의 여부였습니다. 인간은 자발적으로 책임지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의무가 필요합니다. 즉, 이러한 인간과 동물의 이율배반적인 관계 극복을 위해서는 의무감을 부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의무, 납세의 의무. 즉, '동물세'의 법제화가 필요합니다.


③ 모든 반려동물 양육자들이 자발적으로 세금을 내는 그날까지

에리히 프롬은 저서 [소유냐 존재냐]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애완용 동물에게는 의무 이행 여부와 상관없이 생존을 위한 절대적 권리를 보장하면서 같은 인간에게는 그렇지 않는다고 꼬집으면서 말이죠. 

인간은 ‘사회에 대한 의무를 다하든 다하지 못하든 관계없이 생존을 위한 절대적 권리를 지닌다’는 규범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애완용 동물에게는 인정하면서 같은 인간에게는 인정하지 않는 권리다.

우리는 부쩍 사회면을 통해 주인을 꼭 빼닮은 개새끼들이 지나가던 행인을 물어 최악의 경우 사망에 이르게까지 하는 경우를 종종 목격합니다.  반려동물 주인들은 마치 자신이 키우는 동물과 동일시하여 그들에게도 절대적 권리를 인정하고 있는 것일까요.

The justification for the Hundesteuer (dog tax) is partly that dogs often leave public areas dirty, but the safety of both the animals and the public also plays a part. Dogs in Germany must also be registered with the authorities, neutered, micro-chipped, and - depending on the breed - undergo a 'character test' to determine whether they should be muzzled when in public. - THE LOCAL_DE

여러분, 독일에서는 이미 개세금을 부과하고 있습니다. 세금 부과의 핵심은 공공장소, 생태계, 사람에게 미칠 잠재적 피해, 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인력 투입에 대한 보상 등을 이유로 개 세금에 정당성을 부여했습니다. 이는 반려 동물이라는 존재가 필연적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줄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죠. 



이번 글에서는 귀여운 동물들이 반려자로 격상된 과정과 그 이면의 의미를 알아봤습니다. 사실 귀여운 동물들이 무슨 잘못이 있겠습니까. 인간 제멋대로의 사랑을 감히 '반려자'의 개념을 빌려 사용하는 '반려동물 애호가'들이 사실 가장 문제입니다. 여러분 우리 부디 인간의 이기심과 모순조차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는 인간다움을 통해 귀여운 동물을 이용하지 말고, 진정으로 사랑하며 공존합시다.  



1. https://brunch.co.kr/@happinessdanish/33

2. https://news.joins.com/article/21552293

3. https://www.thelocal.de/20170126/should-germans-have-to-pay-tax-on-pet-cats

4. https://news.mt.co.kr/mtview.php?no=202401190844001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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