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통제를 상실한 대중은
또 다른 불평등과 억압을 만드는
악순환의 고리다.
- 오르테가 이 가세트 -
스페인의 철학자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자기만족을 최우선으로 삼지만 특별한 자질이 없는 대중의 집합체를 '평균인'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이 평균인은 개별 시민으로서 민주주의 주체가 되었지만 동시에 민주주의 힘을 스스로 파괴 중입니다.
우리가 부지불식간 파괴하고 있는 민주주의를 저는 귀여움으로 정의하고자 합니다. 현대사회에서 귀여움은 곧 선 (善)입니다. 귀여움은 거부감을 주지 않습니다. 귀여움은 구체적으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귀여움은 귀여움 그 자체로서 설명되기 때문이죠. 귀여움에 대한 평가와 판단은 즉각적이고 직관적입니다. 민주주의도 이러한 귀여움의 특성을 공유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무언가 의사결정을 할 때, 다수결을 따르지 않고 독단적으로 판단하려고 하면 어색한 주변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죠. 그렇게 욕을 먹는 한국 정치도 최소한 국민의 대표성을 부여받은 인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즉, 귀여움이 곧 진리로 여겨지는 사회 분위기처럼 민주주의 또한 절대선으로 여겨지며, 당연한 추구해야 할 것으로 우리 모두에게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에이브리험 링컨이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을 외치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유명한 문구를 보는 사람들의 반응은 시큰둥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은 우리 모두가 정치 활동에 어떠한 형태로든 참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민이 어떠한 형태로든 정치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 훗날 자유민주주의의 가장 큰 위험 요인이 될지 누가 알았을까요. 자유민주주의에 더 이상 자유가 존재하지 않는 이유를 생각하지 않는 순간, 먼 훗날 링컨의 유명한 연설은 이렇게 회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대중이란 특정한 기준에 따라 자신에 대해 선악의 가치판단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모든 사람들과 동일시하면서 불편함보다는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들 모두를 의미한다. - 오르테가 이 가세트
① 민주주의라는 하나의 제품 (Democracy as a product)
제품에는 수명이 있습니다. PLC (Product Life Cycle)라고도 합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2024년 버전의 민주주의는 그 수명이 다 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 제도를 둘러싼 환경이 급격히 변했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의 가까운 미래를 보여줄 결과가 이제 한 달 남았습니다. 미국 대선 결과를 알 수 있기 때문이죠. 물론 미국 대통령으로 누가 당선될지가 가장 중요하겠습니다만 저는 이번 선거에서 민주주의를 제품과 상품의 관점에서 분석하고자 합니다.
민주주의는 쇠퇴기에 진입했습니다. 대표적 사례가 미국 주도의 '민주주의 정상회의' 개최입니다. 보통 시장에서 압도적 지위를 갖게 되면 보통 나서지 않습니다. 과거의 테슬라가 그랬고 (TV 광고를 하지 않았스니다) 엔비디아, ASML 등이 그런 위치에 있었던 회사들이었죠. 민주주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소련과의 체제 경쟁에서 승리한 이후 미국을 대표로 하는 서방 체제는 흔들림이 없어 보였습니다. <민주주의 정상회의> 개최 자체가 필요없었지요. 민주주의는 기준이자 승자의 체제이자 전 세계에서 따라야 할 규칙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1당 독재 국가로 대표되는 중국의 부상과 헤게모니 경쟁이 지속되며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에서 발간한 <제3차 민주주의 정상회의 개최 의미 및 시사점 국문 초록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전문이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아래 첨부 파일 링크를 삽입했습니다)
이번 민주주의 정상회의 개최를 통해 확인한 시사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넷째 생략)
둘째, 한국형 민주주의 확산 모델의 필요성을 확인하였다.
셋째, 디지털 신기술을 활용한 외부 세력의 선거 개입에 철저하게 대비해야 한다.
② 바람직한 롤모델이 사라지고 있는 민주주의
민주주의 역사가 깊은 유럽이 가난해지고 있다는 뉴스 많이들 보셨을 겁니다. 유럽의 인재들은 미국으로 탈출하고 있으며 유럽으로 탈출한 난민은 기존 국민들의 불행의 씨앗이자 재앙의 근원이 되고 있습니다. 현시점에서 유일하게 미국의 민주주의만이 중국의 공산주의보다 우월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도 그럴까요? 그건 알 수 없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시작됩니다. 미국은 정치 경제 군사 문화적으로 모두 중국보다 뛰어났으나 경제/군사적으로는 미국과 대등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미국 정부 기관의 분석 보고서를 보면 상당 수준의 위협을 경고하고 있죠. 그나마 확실한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이 바로 정치, 즉 민주주의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앞서 위에서 인용한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문장, "한국형 민주주의 확산 모델의 필요성을 확인하였다." - 를 집중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식과 미국식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에 대한 복잡한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결국 미국과 유럽 중심의 기존 선진국이 아닌 역사가 짧은 한국식의 민주주의 모델을 언급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기존 체제의 불안과 위기를 내포할 수 있다고 저는 해석합니다. 그러한 위기의식에서 결국 미국은 중국과의 경쟁에서 확실하게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개최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유럽 그리고 미국의 민주주의는 더 이상 우리의 롤모델이 될 수 없을까요?
③ 다양성 존중과 기술의 발전이 빚어낸 민주주의의 퇴행
민주주의의 가장 큰 위기에는 기술의 발전에 따른 정치관 무관심과 극단적 관심의 양분화가 있습니다. 정치인들은 선거 유세와 투표 회득에 적합한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사용하게 됩니다. 더욱 단순하고 거침없으며, 핵심의 핵심만을 남겨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짧고 명확하고 선명한 메시지의 선동 효과는 이미 역사적으로 증명되었기에 포기할 수 없는 무기입니다.
하지만 SNS 발전과 확산 이후 보이지 않는 위기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자기 검열'입니다. 정치적 무관심과 정치 양극화는 비례 관계에 있습니다. 온라인에서는 누구나 쉽게 말할 수 있으나 의식이 있는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쉽게 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누구에게나 지적받을 수 있고, 타인의 바람직해 보이는 옳고 그름을 강요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정치적 올바름, Political Correctness)
이런 현상이 지금 이 순간의 가장 큰 위기인 이유는 인류 역사상 지금처럼 '자기 자신이 가장 우선인' 시대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대의'라는 것이 있었고, 뛰어난 사람은 '영웅'으로 취급받고 마땅히 존중하는 문화가 있었습니다. 단순히 옳고 그름과 좌/우, 찬/반의 문제가 아니라 '더 나음'이라는 압도적인 우/열이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더 나음'을 찾기 힘들죠. 왜냐하면 다양성은 존중되어야 하는 사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더 나음' 대신 '다양성'을 추구했기 때문에 극단적인 경쟁을 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여기도 맞고 저기도 맞으니까 내가 지지하는 가치와 행동을 추구하는 것의 최댓값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필자와 같은 일반 시민의 입장에서는 극단과 극단이라는 선택지 앞에서 '선택'을 하게 됩니다. 그러한 선택의 연속이 민주주의가 됩니다. 앞으로의 민주주의는 어떻게 될까요.
이번 글에서는 우리 현대사회에서 대표적인 선(善)으로 여겨지는 민주주의라는 제도의 위기와 그 원인을 '귀여움'의 속성에 빗대어 분석해보고자 했습니다. 한 문장이라도 대안을 제시하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하였습니다. 좋은 의견이 있으신 분들은 생각을 공유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참고 영상]
https://youtu.be/-jezuZzMO04?si=NrPzqMc0VaHazh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