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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 ONE Sep 08. 2024

친구 같은 부모가 자식에게 위험할 수 있다면

선을 그어주지 못하는 부모, 선을 넘어버리는 자식

자율과 복종, 자유와 규율이
절묘하게 공존할 수 있도록
가상의 선을 그려주는 일
그것이 자식에게 좋은 부모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이다

부모가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일이 무엇일까요? 단언컨대,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인간이 되도록 하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프랑스 부모들에게 자녀에게 가장 바라는 바가 뭐냐고 물어보면 ‘스스로를 편안하게 생각하기’나 ‘세상에서 자신의 길을 찾아내기’ 같은 것을 꼽는다고 합니다. (프랑스 아이처럼, 파멜라 드러커맨)


하지만 필자는 대한민국에 살면서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자신의 부모에게 독립하지 못하고 동시에 그 부모도 자식으로부터 독립하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목격했습니다. 대다수의 한국의 부모와 자식은 독립적으로 지내지 못할까요?


그 이유는 부모가 독단적으로 독재적이어야 할 때 권위적이지 못했으며, 동시에 자식에게 극단적인 자유를 추구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는 (상호 양립 불가능해 보이는) 모순적인 존재가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바야흐로 경계가 사라진 시대입니다. 무엇이 100% 옳다고 말하기 힘든 시대이죠.  우열을 가릴 수 있고 엄연히 옳고 그름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점점 확신을 갖기 어렵습니다. 부모라고 다를까요. 스스로가 사는 인생에 확신을 가질 수 없는 시대적 분위기에서는 바람직한 역할 모델을 찾기 어려울뿐더러 본인 또한 자식에게 바람직한 모델이 되기란 쉽지 않은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람직한 역할 모델이 사라진 시대에서도 전 국민의 육아 멘토가 되는 인물이 등장했으니, 그게 바로 오은영 박사였습니다. 보통 바람직한 가족 모델은 세대를 거쳐, 또는 주변 친구와 이웃을 통해 구전되어야 마땅하나 이제 현대인은 방송을 보고 역할 모델을 찾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오랜 세월 동안 오은영 박사의 마음 챙김이 육아의 바이블처럼 여겨지고 많은 효과도 있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으나 (오은영 박사의 의도와는 다르게) 부작용 또한 존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부모가 부모로서 제대로 된 선을 그어주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선을 그어주기 위해선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부모도 피곤합니다. 부모에게 요구되는 자격과 능력, 그리고 스스로에게 부과되는 책임감의 수준도 높아졌습니다. 끊임없는 인내와 노력으로 자식에게 올바른 길을 인도하기에는 본인 스스로가 잘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처음이라는 이유로 자기 자식을 어떻게 키우는 게 맞을지 자기 확신이 부족해집니다.

 

부모에게 요구되는 역할과 책임감이 많아지다 보니, 부모도 사람인지라  당장 아이의 편한 상태를 최우선으로 충족하는 상태를 추구하게 됩니다. 대다수의 부모들이 내 아이에게 무엇이 바람직하고 필요한 지를 고려하지 않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다만, 부모가 아이와 부모 자신에게 편한 상태를 가장 먼저 추구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가치 판단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가치 판단을 하지 않는다는 뜻은, 결국 무엇이 맞고 틀린 지에 대한 기준을 자식에게 보여주지 못한다는 뜻과 같은 의미입니다.


다시 말하면, 오로지 자식이 원하는 것을 맞춰주기만 하면 되는 양육 방식은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동등하고 민주적인 사이로 만드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죠.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평등할 수 없습니다. 아주대 조선미 교수의 말처럼 결국 부모의 고유한 역할은 "선을 그어주는 것"이다. (물론 그 선은 먼저 부부 상호 간에 협의가 전제되어야 할 것입니다)

마음을 읽어주라니까
 아이 감정을 읽어주는 데서 나아가
자기 마음대로 하게 해주는 경우가 있어요.
하지만 아이의 주장은 허용해 줄 수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감정은 읽어주되
아이의 주장을 수용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부모가 결정해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아이가 밖에서 울고 불고 짜증 내면 태블릿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많은데 주변 사람들이 눈치를 주더라도 반드시 훈육을 해야 합니다. 아이를 위해서 더더욱 그렇습니다. 어렸을 때 강제적으로라도 훈련되어야 할 집중력과 절제의 능력을 빼앗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식에게 친구처럼 귀엽게 다가가려는 부모가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지 못하는 순간, 엄격한 모습이 필요할 때 엄격한 모습을 보이면 자식들은 당황할 것입니다. 아이들은 부모를 이미 같은 선 위에서 손에 손잡고 놀 수 있는 동등한 존재로 부모를 인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선미 교수는 이러한 상황을 본인의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했습니다.

설명하고 선택권을 주는 게 설득입니다. 엄마가 설득 조로 말하면 아이들은 자신이 선택권을 가지고 있다고, 즉 자신이 갑의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설득은 아이들한테 하는 게 아닙니다.
내가 뭘 얻어내고 싶은 고객한테 하는 겁니다. 아이를 자꾸 설득하면 자기를 고객으로 착각합니다. (조선미의 현실 육아 상담소)

오늘의 주제는 간단합니다. 부모는 아이에게 귀여운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아이들에게 휘둘리지 않는 ‘권위 있는’ 부모가 돼야, 아이도 정서적으로 건강하게 자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부모는 아이들에게 휘둘리지 않는 삶을 살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 시작은 내 자식이, 우리 아이가 부모의 야심을 충족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며 회사 일과 같은 프로젝트가 아님을 인정하는 일에서 부터 시작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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