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점을 찍는 1시간, 점심 혼자 먹는 남자 (1)
한 남자가 있었다.
마음의 점을
홀로 찍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한 남자가 있었다. 혼자 점심을 먹는 사람이. 마음의 점을 홀로 찍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밥은 홀로 남았다. 밥에는 열기가 남지 않았다.
열기가 두려웠다.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밥을 먹는 행위는 쉽다. 입을 열고 씹는다. 그리고 넘긴다. 허나, 밥을 두고 이야기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이야기라고 특별한 것이 있겠는가. 업무, 연애, 결혼,주식, 부동산 관련된 이야기.
혼자 점심을 먹은지도 5년째. 매번 혼자 먹는 건 아니지만, 자발적 혼밥의 오랜 역사는 딱히 특별하지는 않아서 짧게 쓴다. "점심을 누군가와 같이 먹는 게 일처럼 느껴져서" (그때는 영업을 할 때라 맛있는 밥 사주면서 마케팅 예산이 어느 정도인지, 집행 계획은 어떻게 되는지, 상품을 어떻게 팔 것인지를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하는 게 왜 그리도 어렵던지)
혼자 밥을 먹는다는 것, 따뜻한 대기업 울타리 안에서 흙먼지 뒤덮인 채 함바집을, 외국인 노동자와 정년퇴임 후 재취업을 한 노동자가 즐비한 골목에 있는 '밥집' (요즘 말로는 한식뷔페)에서 30분 안에 식사를 마친 후 믹스커피 한잔만이 유일한 휴식 시간인 그들을 생각하면, 혼자 밥을 먹다가 울고 싶을 때가 종종 있다.
식대 지원이 되지 않아서, 점심 비용을 아끼고자, 시간에 쫓겨서 편의점 김밥과 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하다가 사망한 사람들의 뉴스가 떠오른다. 산업재해의 피해자가 되어버린 넋들이 떠오를 때면 침묵의 혼잣말을 종종 한다. 이런 내가 어찌 누군가와 밥을 같이 먹을 수 있겠는가?
따사로운 햇살 아래, 서울시 부자동네의 광명과 혜택을 한 몸에 받은 이곳 양재천, 매헌시민의 숲을 점심시간에 거닐면서 나는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한다. 팔자 좋게 테니스를 치고 있는 사람들, 타워팰리스를 향하여 달리는 몸매 좋은 젊은 남녀, 알록달록 의상으로 봄을 맞이하는 상춘객들과 상당한 시급의 어르신 일자리 사업으로 정돈된 꽃과 나무들을 여유로운 표정을 볼 때면, 사원증을 당당히 패용한 상태로 마주 걸어오는 사람이 있어도 먼저 방향을 트는 경우 없이, 핸드폰에 정신 팔려 전방 주시를 하지 않는 수많은 '같은 소속'의 직장인들을 볼 때면, 점심은 역시 혼자 먹는 게 제맛인가 싶다.
나에게 주어진 마음에 점찍는 시간, 점심 한 시간. 자고로 "점심"의 "점"은 "마음에 점을 찍는다"는 뜻으로, 허기가 져서 집중력이 떨어질 때 정신을 차릴 수 있게 마음에 불이 반짝 붙을 정도로 간단히 먹는 것을 의미한단다.
점심을 혼자 먹는 남자는 점심 혼자 먹는 남자들이 궁금하다. 각자가 처한 환경에서 제 자신을 먹여 살리기 위해, 처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노부모를 먹여 살리기 위해, 또는 죽지 않기 위해 점심을 혼자 먹는 사람. 점심을 혼자 먹으며 하는 생각들. 그 생각과 상상이 따뜻한 마음의 점찍음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뜨끈한 오봉밥이 될 수 있는 문장을 찾기 위해 오늘도 나는 점심을 혼자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