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내리'사랑이 '우리'사랑이 되기 위해서는
술잔에 담긴 인생의 고단함, 아버지가 짊어온 삶의 무게는 그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술에 취한 아버지의 어깨를 걸치고, 옷을 벗겨드리고 있을 때, 아버지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랑 단 하루만 인생을 바꿔 살고 싶다."
행복 글쓰기가 시작된 순간이다. 나는 궁금했다. 왜 수많은 부모들은 자식의 성공을 위해서 희생을 당연시하는지. 왜 많은 사람들은 부모의 희생과 사랑을 '내리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당연하게 여기는지. 자식이 성공하고 행복하면 부모도 행복해지는 것인지. 부모가 자식의 성공과 행복을 바라는 건, 그들이 갖지 못한 것을 자식에게 투영하는 것인지. 그렇지 않다면 부모의 희생은, 부모 자신의 행복을 포기하면서 자식을 위해 살 필요가 있는지 등의 질문들은 하나의 물음으로 정리되었다. "우리는 행복을 교환할 수 있을까"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나는 5개월 간 덴마크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내고, 이후 1달 동안은 유럽과 아프리카를 여행했다.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취업 준비를 했고, 약 3개월 동안 진행되었던 내 취업 준비는 2곳의 대기업으로부터 받은 최종 면접 불합격 소식으로 막을 내렸다.
그래도 시간은 흐른다. 내 인생은 쌓여야 할 텐데, 흐르기만 하는 내 삶에 쉼표를 찍고 뒤돌아봤다. 인생은 선이었다. 개별적으론 점이지만, 그 점을 잡고 무엇을 그릴지는 온전히 내 선택이었다. 그러다 문득, 무언가를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서 부모님을 다시 만났다. 부모는 자식의 인생만큼은 무한한 가능성 속에서 살기를 바랐다. 그들의 팔자는 마치 "무한대( ∞)를 그려주려 쓰러진 팔자(8)"라는 가사와 같았다. 두 팔로 짊어온 삶의 무게를 이제는 덜어내드리고 싶은데, 현실과 이상의 저울질에서 무게추는 기울지 않고 있다. 균형을 찾으려는 삶의 무게중심. 그 속에 담긴 미세한 움직임은 어떻게든 사회의 빛을 보려는 내 꿈틀거림과 닮았다고 느꼈다.
자식과 부모의 행복을 어떻게 공유할 수 있을까 고민하기 앞서, 한 가지 상황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가령, " 책 읽어라. 그래야 공부를 잘한다. 다 너를 사랑해서 하는 이야기다.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야." 등의 말먼지들에 문제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보통, 부모가 집에서 책을 많이 읽으면, 자식도 으레 책을 읽는다. 하지만, 자신은 TV를 보고 있으면서, 자식한테 공부 열심히 해라 등의 언행불일치를 일삼으면, 그건 사랑도 아니고, 희생도 아닐뿐더러, 자기만족을 위한 양육 방식일 뿐이다. 따라서, 부모의 입장에서는 내가 자식에게 하는 말들이, 진정으로 자식을 사랑해서인지, 자식을 본인의 욕망 투영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인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자식의 입장에서도 부모의 언행이 자신을 정말 사랑해서인지 의심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이루지 못한 것을 이뤄야 하는 방향으로 길러졌었다. 내 인생의 성공을 위한 것이라고 했지만, 성공에 이르는 길은 한 가지가 아님을 다소 늦게 깨달았다. 그래도 대학에 입학한 후 내가 처한 현실과 하고 싶은 것들 사이에서 치열한 타협을 하며,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떻게 늙고 싶은지를 깨달으며 내 인생을 찾았다. 즉, 자기 인생이 무엇인지 알아야, 남과 얘기하고 공유하며 같이 즐겁고 행복할 수 있다.
지난 시간을 되돌아봤다. 언제 나는 부모님과 함께 행복감을 느꼈는지. 가깝게는 면접을 볼 때마다 받는 면접비로, 부모님께 저녁을 사드릴 때였다. 맛있는 음식도 중요하지만, 같이 술잔을 부딪히며 나눴던 행복한 상상이 핵심이었다. 이제 ~만 합격하면,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겠다. 가족끼리 모여 캠핑을 간다든지, 십시일반 해서 여행 비용을 마련한다든지,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한 그 순간만큼은 행복했다. 마지막 포인트는 '합격'기원의 마음을 담아 로또 복권을 사며, 1등에 당첨되면 무엇을 할지, 서로의 꿈과 미래에 대해 얘기하는 것. 취업 준비를 하며 가장 힘을 얻었던 순간이자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다시 한번 위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게 슬프기는 하지만...)
결과가 아닌 과정을 공유하는 것은 쉽지 않다. 내가 마주한 현실과 부모님이 마주하는 현실, 또는 내가 인식하는 현실과 그들의 인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서로 다르고 말이 통하지 않을 때, 더 이상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려 하지 않고 무시하고 회피한다. 그래서 삶의 전반을 공유하기보다는 '행복'에 대한 상상을 같이 나누는 게 중요하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현재의 고민과 불안, 미래의 지향까지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OO차를 사고 싶다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면, Youtube를 통해 시승 영상 등을 같이 보다 보면, 이 차를 타고 어디로 떠나고 싶은 욕망, 차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욕구, 넓은 좌석에 가족들과 함께 다니고 싶은 마음까지 알 수 있게 된다. 만약, 가족과 해외여행을 간다고 한다면, 여행 코스도 같이 짜보며, 여행에서의 역할도 분담해보며, 무엇이든 '같이'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 글은 유난히 쓰고 지우기를 많이 반복했다. 키보드 위의 손가락이 양심의 가책을 느꼈나 보다. 부모의 사랑과 희생이 자식의 행복으로, 자식의 성공이 부모의 행복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머릿속의 있는 것들을 행하면 된다. 너무나 간단하다. 만고불변의 진리는 호들갑을 떨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