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눈은 즐겁고 귀는 괴로운 도시
9. 무제, 4월의 여행기
#2019.04.05, 중국동방항공 기내에서
식목일이라고 말하는 게 어색할 만큼 이 날짜의 의미는 미세먼지로 덮인 하늘처럼 고유의 색을 잃어가고 있다.
어떤 생각과 또 다른 생각을 이어 붙이고, 버리고, 나누고 하는 과정에서 분명 무언가를 깨닫고 발견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약 4개월 전,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던 나는, 여행이 가진 불확정성이자 곧 가능성을 믿고 일본으로 떠났었다.
그때의 선택은 잘못된 것이었을까. 어느 한 곳에 소속되지 못하고 어느새 다시 방황하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삶의 주도권을 빼앗긴 기분.
글쓰기가 내 삶을 풍족하게 만들 것이라는 새해의 다짐, 카피라이터로서의 미래를 꿈꾸던 젊은 날의 에너지는
일상의 관성과 일생의 관습 사이에서 그 힘을 잃어가고 있다.
그래서 '혼자' 여행을 다시 시작한다. 새로운 생각을 위해선 새로운 공간이 필요하다. 물리적 이동이 갖는 힘은 단순히 장소의 전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고정되어 있는 현실 감각에 자극을 주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조금은 알아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중국어의 향연과 함께 내 몸은 다시 뜨기 시작했다. 조금은 들뜬 기분이랄까. 어쨌든, 이륙과 착륙이 한 몸이듯, 앞으로의 인생에도 고민들은 끊임없이 뒤따를 것이다.
# 2019.04.07, 상하이 신천지 카페에서
계획이 없는 여행은 언제나 많은 걸음을 필요로 했다. 생각을 걸어둘 데가 없어 정처 없이 걸었던 여행에서 얻은 것이라곤 네 번째 발가락에 잡힌 물집뿐.
귀를 괴롭히는 중국인들의 억양 조차도 외로움이 들어오는 소리는 못 막는 듯하다.
중국, 세상의 중심을 자처하는 이곳은 역설적으로 온 세상의 SNS를 차단한 채,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고 외부와 자발적인 고립을 자처한다.
Disconnet to connect, 연결을 위한 단절,
그 이질성은 아이폰 10을 손에 쥐고 QR코드로 구걸하는 화장기 짙은 여성의 모습에서 극대화된다.
동방명주를 가로지르는 황푸 강과 주가각을 흐르는 양쯔강처럼, 인생도 흐르는 물처럼 자연스레 살아가면 되는 것일 텐데. 그 흐름에 자신을 맡기기 싫어서 또다시 글을 써본다.
무엇인가를 쓴다는 것은, 인생의 중심을 붙잡기 위함이며 일상을 쌓는 하나의 건축 행위이자 그 자체로 여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