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상문 공모전 당선 후, 소녀의 꿈은 이뤄졌을까?
오늘 할 얘기는 사실 작품에 관한 이야기라기보다 내 꿈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선 1992년 한 스포츠 신문에 올랐던 영화 감상문 공모전의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그 공모전에 내가 보고 써냈던 감상문의 작품은 1991년 7월 17일 개봉한 영화 <지금 우리는 사랑하고 싶다>로 원작은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원대희 작가가 직접 투고해서 쓴 글로 <일등부터 꼴찌까지의 우리 반을 찾습니다>와 <칠수와 만수>로 유명한 황규덕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완성한 영화이다.
당시엔 유난히 청소년 영화가 많았던 것 같다. 1965년 조흔파 선생의 <얄개전>을 원작으로 한 하이틴 코미디물이 시리즈 원조를 시작했고, 80, 90년대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스무 살까지만 살고 싶어요> 최수종, 하희라 커플이 함께 출연했던 <있잖아요. 비밀이에요> 등등 하이틴 스타들이 출연해 1, 2, 시리즈로 나오는 청소년 영화들이 성행했었다.
당시 학생들에겐 학력고사와 내신성적 외에 학교 안에서의 낭만들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각박했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입시나 학교를 생각해 보면 우리 때의 자율학습이며, 입시면담이며, 학교 선생님을 전적으로 믿고 상담하던 그때가 어떤면으론 오히려 낭만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당시 기성세대들의 배려였을까? 유독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고민하는 청소년들의 이야기가 영화로 많이 만들어졌고, 그 영화가 관심을 받았다.
당시 부모님과 선생님들의 우리들에 대한 한결같은 반응은 모든 것은 대학에 가면 다 해결된다는 생각이었다. 남자친구도 대학 가서, 취미 활동도 대학 가면, 학교 안 동아리 활동도 대학 가면 다 할 수 있는 것이라며 나중에 나중에를 외치셨다. 물론 그럼에도 나는 열심히 동아리 활동에 온 열정을 다 쏟았었지만, 친구들은 모두 어른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공부에 전념했다.
다시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내가 정확하게 글쓰기를 시작했던 계기가 된 것은, 바로 한 스포츠 신문에서 주최했던 영화감상문 공모전에서 수상을 한 덕분이었다. 나는 당시 학생들의 마음을 대변해 주던 영화들을 비디오로 빌려보길 즐겨했었고, 그 감상문을 나름 일기에 조금씩 적어두었었다. 그땐 알지 못했지만, 당시 엄마는 내 일기장을 매일 연재되는 짧은 소설 읽듯이 몰래 읽고 계셨던 것 같다. 그래서 당시 나는 우리 엄마는 다른 친구 엄마들과 다르게 내 마음을 잘 안다고 생각했고, 다른 친구들도 엄마와 친구처럼 지내는 나를 늘 부러워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엄마가 나의 일기장을 읽고 있다는 걸 알고, 그 배신감에 엄마에게 등을 돌린 일도 있었지만······.
아무튼, 엄마가 어느 날 스포츠 신문에서 영화감상문 공모 기사를 오려와 나에게 전해주며 말씀하셨다.
“너 영화 보는 거 좋아하던데, 이거 한번 해 보지 그래?”
“영화 보는 걸 좋아하기는 하는데, 감상문을 한두 사람이 보내는 것도 아니고, 되겠어?”
“되고 안 되고 가 중요한 게 아니고, 도전하는 자체가 중요한 거잖아! 한번 해봐! 밑져야 본전이지 뭐······.”
“와! 상금이 20만 원이나 되는데? 당선되면 상금 다 내 거!”
“얘는 당연하지! 네가 쓴 글로 당선되는 건데!”
그렇게 엄마의 권유로 영화를 골라서 본 것이 <지금 우리는 사랑하고 싶다>였다. 사실 작품 자체가 나에게 큰 기억에 남을 만큼 인상적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전반적인 내용이 기억나질 않는 걸 봐선 말이다. 여주인공인 신윤정 씨가 나의 절친이었던 은주를 많이 닮아서 여주인공만 생각이 나는 그런 작품이었다. 희미하게 감상문의 주 내용을 떠 올려보면, 이 작품은 우리와 같은 청소년 작가가 직접 썼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과 당시 나도 나름 우등생이었던 시간에서 입시 위주의 교육으로 인해 나의 개성을 잃어가는 것 같아 공부 자체에 흥미를 잃었고, 그렇게 성적이 떨어지다 보니 목표가 사라져 방황하는 친구들과 대학만이 전부는 아닌 것 같다는 것, 그리고 고교생에 걸맞게 서로를 응원하고 힘이 될 수 있는 사랑을 하고 싶다는 뭐, 그런 내용의 감상문을 썼던 것 같다.
한 달쯤 뒤에 영화진흥공사에서 연락이 왔다. 스포츠 신문에서 주최한 감상문 고교생 부문에서 수상하게 되었다며 시상식에 참여하라는 전화였다. 나는 아주 자랑스럽고 당당하게 학교에 통보하고 평일 오전 있었던 시상식에 참석했다. 아빠는 카메라를 들고 수상식에 따라왔다. 당시의 나는 아빠가 아주 창피해 죽는 줄 알았다. 내가 시상식장 입구에서 전시된 영화 포스터를 보고 서 있는데, 아빠가 말했다.
“가만히 있어 봐! 그렇게”
“왜?”
“아니, 돌아보지 말고, 자연스럽게 그 포스터를 보고 있어!”
“아! 쪽팔려!”
“아, 이런 게 다 추억이야! 우리 딸이 여기 있었다. 이런 기록 아니냐! 얼른 앞에 봐!”
아빠는 멈추지 않았다. 내가 시상식장으로 들어가는 모습, 어른들을 보고 인사하는 모습, 수상자로 이름이 호명될 때, 시상받을 때······. 아주 누가 보면 스포츠 신문 사진기사이신 줄 알았을 것 같다. 당시엔 여고생답게 퉁퉁한 모습에 교복을 입고 길게 따 내린 머리를 했던 나의 모습이 창피해서 아빠가 그런 나를 연신 찍어대는 게 너무 부담스럽고 창피했다. 그 사진들을 지금 보면서 당시 아빠가 그리워 울게 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었는데, 그 사진 한 장에 담긴 추억은 고스란히 내 기억 속에서 그대로 떠오르고 어느새 눈가를 촉촉하게 적시고 있다. 그때 이 순간이 이렇게 소중하게 남을 거란 걸 알 수 있었다면······.
그깟 감상문 상 좀 받은 게 뭐라고 학교 전교생 앞에서 교장선생님까지 수상을 다시 해 주셔서 나는 잠시 유명인사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과에서 당당히 예체능으로 전과를 할 때도 담임선생님께서 반대 없이 반을 옮겨주셨다. 이 작은 수상하나에 말이다. 내가 받은 상금 20만 원은 당시 일반 사무직 여직원의 한 달 봉급이 30만 원 정도였으니까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엄마는 어려운 살림에 그 돈이 필요하셨을 텐데, 내가 준 돈으로 통장을 만들어 내게 주시면서 말씀하셨다.
“이 돈은 네가 꼭 필요한데 써! 이 돈을 기반으로 돈을 더 모아도 좋고, 엄마 아빠 도움 없이 네가 네 힘으로 번 돈이니까 꼭 쓰고 싶은데 써봐!”
“진짜지? 나중에 후회하기 없기!”
“쓸데없는데 다 쓰지 말고,”
“알겠어!”
“계속 그렇게 글 쓰고 너 하고 싶은 거 하면서 돈 벌면 좋겠다.”
“그럴 거야!”
“그럼, 우리 딸은 꼭 그래야지!”
나는 당시에 너무 당연하게 그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내 삶이, 내 꿈이 너무 자신이었다. 뒤로 소형영화제에서 내가 쓴 시나리오가 가작상을 탔다. 아주 자신감이 하늘을 치솟았다.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넘쳤다. 하지만, 그 자신감과 꿈들이 나의 부모님 곁에 건강하게 계셨기에 가능했던 것들 이었다. 엄마의 건강이 무너지면서 나의 세상도 모래 위에 쌓아 올린 성처럼 와르르 무너져 세상의 온갖 쓴맛을 다 보게 된다는 것을 그땐 미처 알지 못했다.
그 뒤로 정확하게 일 년 뒤에 엄마는 투병을 시작했고, 모든 게 나를 위주로 돌아가던 우리 집은 나를 위해 아무것도 해 줄 수가 없었다. 엄마의 병원비로 나는 재수를 해야 했고, 엄마가 남기고 간 빚으로 나는 꿈을 포기하고 결혼을 선택해야 했다. 그렇게 내 생각과 계획에도 없던 삶을 살게 되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 나의 소녀 시절 꿈도 잃고, 나를 지지하던 엄마와 나를 자랑스러워하던 아빠가 모두 하늘의 별이 된 지금. 살기 위해 발광을 하다가 이제 좀 숨이 쉬어져 정신을 차려보니 조금 믿어진다. 엄마와 아빠는 하늘에서 나를 응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고단함에 지쳐 힘들던 시절이 어느 정도 안정이 되어가고 이제 좀 살아도 되겠다는 안도가 다시 뭔가 쓸 기운을 줬다. 문뜩 오랜만에 당시 신문에 올랐던 나의 이름 석 자를 보면서 그때 <지금 우리는 사랑하고 싶다>의 작가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그때 촉망(?) 받던 나는 한참의 시간을 돌아 이제 다시 펜을 들었는데, 계속 작품활동을 활발히 하고 계신다면 좋았을 텐데, 자료를 찾기가 쉽지 않은 게 다른 길을 걸어가신 게 아닐까 싶다.
'때'라는 게 있다. 부모님의 그늘에서 마냥 꿈만 꾸던 시절 뭐든 이룰 수 있을 것만 같았던 그 시절은 내게 꿈같은 기억이고 소중한 추억이지만, 난 그 꿈을 잃지 않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살았다. 나를 지지해 주고 믿어주었던 부모님들은 오래전 스크랩된 한 장의 사진처럼 세상에 나라는 분신하나 남기고 사라지셨지만 내 기억 속엔 그분들의 자랑스럽고 대견한 딸도 아직 존재한다.
다시 '때'가 왔다. 이젠 무엇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 힘들게 주저하고 망설이던 한 발을 더 내밀어 본다. 그때 스포츠 신문 한쪽 귀퉁이에 나의 이름을 보고 뿌듯했던 어린 소녀의 그 꿈을 이뤄주기 위해서 말이다. 이젠 나도 꽃을 피울 시기가 왔음을 좀 늦게 피는 꽃이 더 오래가는 법이란 것을 보여주고 싶다. 그게 지금 나의 꿈이기도 하다.
할 수 있다. 날 믿자! 그때의 나를 그리고 지금의 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