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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극장 계단에 앉아 꿈을 바꾸다.

나의 인생 영화

by 인지니

영화도, 관람 장소도, 문화도 모두 시대에 따라 유행한다는 걸 절실하게 느낀다. 내가 스무 살 때 한창 영화에 빠져 혼자 개봉관을 돌아다닐 땐 요즘의 멀티플렉스(multiplex) 상영관에서처럼 한 극장에서 몇 편의 영화를 볼 수 없었다. 한 극장에서 한 편의 영화만 상영했기에 그달의 상영 영화를 다 보려면 종로로 갈지 충무로로 갈지부터 정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세종문화회관에서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나면 극장이 모여있는 종로로 이동했다. 종로에서는 큰길을 사이에 두고 서울극장과 피카디리 단성사가 모여있었기 때문에 하루에 세 편의 영화를 볼 수 있었다.

그런데, 그나마도 최근엔 OTT가 활성화돼 그 멀티플렉스 상영관에서도 볼만한 영화가 상영되는 걸 보기가 참 어려운 것 같다. 아무튼, 한때는 그렇게 영화에 빠져 영화를 보기 위해 돈을 벌고, 영화감독이 되기를 꿈꾸던 시절이 있었는데, 참 아련하고 꿈처럼 느껴지는 기억이다. 아무튼, 나에게 그런 계기를 준 영화가 바로 오늘 내가 얘기하려는 영화이다.


사실 고등학교 때까지 문화생활이 뭔지 모르고 살았다. 집에서 아빠는 그림을 그리고 계셨고, 아빠가 만나시는 분들이 모두 화가 아저씨들이셨으니까 그냥 그림을 보던 게 나의 유일한 문화생활이었다. 그리고 영화라고는 국민학교 시절 엄마 손을 잡고 동생과 동네 친구들 몇이 우르르 가서, 김청기 감독의 태권 V, 똘이 장군 등의 만화영화를 보던 게 유일했다. 아직도 당시 공산당을 붉은 돼지와 늑대, 여우 등 동물로 표현했던 반공 만화의 장면들이 생생하게 기억나는데, 어찌나 반공 교육이 잘 됐는지 그 당시 반공 글짓기 대회에서 금상을 탔던 기억도 있다.


그리고 주로 조금 컸다고 느꼈던 6학년 중학교 때 나의 영화관은 토요일 밤늦게 하던 주말의 명화! 당시 여러 가지 명작이 많지만 내가 지금도 명작이라 생각하고 기억하는 장면은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폰트랩 대령과 마리아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장면에서 서로 먼저 첫눈에 반했음을 고백하는 장면이다. 어린 나이에도 내가 먼저 당신을 사랑했다고 고백하는 그들의 사랑이 너무도 아름답고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내가 먼저 널 사랑했다.’ 하는 그 장면은 지금도 내가 바라는 연인의 고백 장면이기도 하다.

사운드오브 뮤직 EBS 방송 화면 캡쳐

이런 밑바탕이 있기에 영화관에 자주 가진 못 했어도 그 감성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리라 생각해 본다.


아무튼, 당시 학교에서 단체로 가는 영화 관람이나 정말 드물게 음악 선생님이 주선하신 피아노 연주회 같은 공연 말고는 따로 영화나 공연을 본 기억이 전혀 없던 내게 삶의 방향을 전해 준 그 영화 <사랑과 영혼>을 보던 그날의 이야기를 해 본다.


고등학교 1학년 2학기 중간고사가 끝나고 얼마 안 됐을 때였다. 같은 반 친구들과 이런저런 수다 끝에 그 영화가 얼마나 화제가 되고 있는지, 너무너무 재밌다는 얘기 꽃을 피우고 있었다.


“야! 얼마나 난리면 극장 앞에서 암표도 동 나서 못 구한다잖아!”

“정말? 그럼 예매하려면 새벽같이 가야 하는 거 아냐?”

“아! 그럼, 우리 사촌 언니가 신문사 기자로 있는데 표 좀 구해달라고 얘기해 볼까?”

“우와! 진짜?”

“잘 됐다. 그럼, 우리 이번 주말에 그 영화 볼 수 있는 거야?”

“앗싸~~”


4명의 단짝 친구 옥이, 현, 정이가 신이 나서 그런 대화를 나눌 때 나는 그냥 심드렁했다. 전 국민이 다 봤을 정도라니까 왠지 더 보기 싫은? 그런 반항심도 조금 있었다. 하지만, 친구들이 약속을 잡고 보자고 하니, 별 기대 없이 시내 구경 삼아 가면서 생각했다. ‘영화가 아무리 재밌어 봐야, 그냥 영화지 뭐·····.’


하지만, 내 생각은 완전히 빗나갔다. 상영한 지 보름이 지나가는데도 표를 구해준다고 했던 언니도 표를 못 구할 정도로 사람들은 줄을 서 있었고, 암표를 파는 사람들이 곳곳에 눈에 띄는 광경에 나는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역시 신문사에 있는 언니의 힘은 있었다. 그렇게 영화를 못 보고 집으로 돌아와야 하나 싶었는데, 정이가 언니와 몇 번 통화를 하더니 상영관 관계자분이 나와서 우리를 극장 안으로 안내했다.



영화관 안에는 불이 꺼져있고, 이미 <대한 뉴스>가 상영되고 있었다. -당시엔 영화 상영 전에 지금 광고 나오듯 뉴스를 상영했었다.- 우리는 조심스럽게 어두운 계단을 살피며 안내하는 아저씨가 앉으라고 하는 좌석의 제일 끝으로 갔다. 자세히 보니 그 좌석은 앞의 의자들 뒤쪽에 적힌 번호가 있는 정식 좌석이 아니라 벽에 붙어있는 보조 의자인 듯했다. 그나마 자리가 세 자리여서 한 명은 계단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곧 영화가 시작되고, 나는 그 어두운 상영관 계단에 앉아서 커다란 화면에 압도당해 완전히 몰입하기 시작했다. 데미 무어(몰리역)와 패트릭 스웨이지(샘역)의 그 유명한 도자기 장면에서 내 눈에도 하트가 뿅뿅했고, 샘이 소매치기의 칼에 죽었을 땐 내 심장에 칼이 꽂힌 듯 안타까움에 안절부절못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던 기억이 없던 그 시절에도 나는 두 주인공을 통해 이별의 아픔을 경험했다. 자신의 억울한 죽음 앞에 그냥 떠나지 못했던 샘이 영매를 통해 사랑하는 연인에게 위험을 전하고 그녀의 안전을 확인하고 자신의 사랑을 전하며 하늘나라로 가는 단순한 이야기에 선과 악이 있고, 삶과 죽음, 사랑과 이별이 모두 담겨있는 이야기에 나는 완전히 반해버리고 말았다. 영혼으로 이생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샘이 여주인공 앞에서 동전을 들어 옮기고 그의 존재를 확인하고 영혼과 재회하는 몰리의 모습을 보고 눈물인지 콧물인지 알 수 없이 뒤범벅을 하고 울며 영화를 보던 내 모습! 마지막 샘이 하늘로 갈 때 꺼이꺼이 통곡하는 나의 모습을 보며 심드렁하게 영화관을 찾았던 나는 어디로 갔더란 말인가? 스스로 생각하고 웃게 된다.

그 영화는 나의 인생을 통째로 바꾸었다. 평소 사람이 죽음 뒤엔 어떻게 되는 것일까에 대한 궁금증이 많았던 나에게 죽은 애인이 영혼이 되어 나타나 연인을 구하려 애를 쓴다는 내용의 야기는 나에게 충분한 호기심과 관심을, 영화 그 이후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펴기에 충분했다.


나의 진로는 영화감독으로 바뀌었다. 수학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내가 영화감독으로 꿈을 전향하고 영화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계기였다. 나는 그런 얘기가 하고 싶다. 삶의 한 편에서 살아가고 있는 나, 그리고 이웃 또 이웃이었던 잊힌 사람들과 아직 떠나지 못하고 있는 이웃들의 이야기 그 시작은 바로 서울극장 계단에 앉아 눈물 콧물을 흘리며 보았던 이 영화였다.


지금 서울극장은 사라졌다. 피카디리 앞 배우들의 손자국도 보이지 않았고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들어서있다. 왠지 모르게 오래전 영화를 보며 느꼈던 아련한 낭만 같은 건 없다. 예약해서 가면 자기 좌석이 정해져 있고, 조금 지나면 어디서건 그 영화를 다시 구해서 보기도 어렵지 않아 아쉬움도 덜하다.


내가 눈물 콧물 흘리던 그날 영화에 몰입했다가 불이 켜지며 다시 현실로 돌아왔을 때, 순간 너무 창피해 주변을 둘러보니 다들 나와 같은 모습이었다. 그날 함께했던 친구들도 모두 울고 있었다.

영화 한 편을 보면서 3시간가량 한 사람의 인생을 살다 나온다. 지금도 영화를 보러 가서 제일 좋았을 때는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모인 그곳에서 순간적으로 몰입하는 그 순간이 너무 마법같이 느껴진다. 그래서 영화가 좋고 그 이야기가 좋다.


그 이야기는 영화가 끝난 후에도 함께 봤던 사람들에게 함께 감상을 나누게 할 것이고, 비슷한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게 했을 것이다. 나의 감정과 경험을 함께 있는 이들과 나누게 했을 것이기도 하고 말이다. 나는 이 <사랑과 영혼> 영화를 보면서 그 모든 것에 너무 큰 매력을 느꼈고, 이야기를 상상하고 만드는 일에 기대를 갖게 되었다.


<사랑과 영혼>, 이 영화를 그 뒤에도 TV에서 수십 번을 더 보았다. 이제는 영화관에서 본 그때의 그 감정보다는 그때 함께했던 친구들, 그때 내가 느꼈던 감정들이 떠오른다. 또 땐 보지 못했던 배우들의 연기와 단순하지만 명료한 감동이 있는 이야기에 나는 여전히 빠져든다.


그로부터 35년이 지난 지금! 그때 나의 꿈은 현재까진 이뤄지지 않았지만, 나는 아직도 이야기를 쓰고 있다. 물론 여러 좌절 끝에 이제야 이야기를 다시 쓰고 있긴 하지만, 아직도 나는 그때 그 계단에서 눈물 콧물 흘리며 이야기 속에 빠졌던 그 소녀의 마음 그대로 이야기를 쓰고 있다.


오랜만에 나의 첫 영화 10대 시절을 떠올리며 그때부터 갖았던 꿈을 아직도 버리지 않고 있는 나를 다시 돌아본다.

누구나 가슴에 꿈을 하나씩 담고 산다. 그 꿈이 무엇이건 우린 그 꿈으로 인해 또 하루를 버티며 살아기는 게 아닐까? 생각을 해 본다. 비록 예전의 그 영화관들은 사라졌지만 지금은 많은 플랫폼에서 더 많은 이야기들을 접하며 더 많은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다. 그때 그 시절 소녀의 마음을 그대로 간직한 채 말이다.


p.s) 그날 함께 영화를 봤던 나의 친구들을 떠올리며


우린 영화를 보고 나와서 많은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수다를 떨며 우리 얘기도 하며 까르르 웃기도 했을 것이고, 비슷한 다른 얘기도 나눴겠지! 나는 오랜만에 옛 영화 이야기를 하면서 잠시 그 영화를 함께 보았던 나의 여고 시절 단짝 너희들을 떠올려 본다. 왜 그땐 너희들이 먼 훗날 이렇게 소중해질 거란 걸 몰랐을까? 우리는 당시 갖고 있던 꿈들은 이룬 것일까?


빡빡한 삶을 살아가며 자주 연락하며 살진 못하지만, 세상이 수십 번을 변하고 휘몰아친다고 해도 함께 지내왔던 시절과 추억이 우리의 가슴에 남아있다면 우린 존재하는 것이다. 그 시절 그 꿈 떠올리며 매일을 살자! 언제나 너희들의 건강과 평온과 희망을 위해 기도하며 감사하는 마음을 전해 본다. 고맙다. 친구들아!


그때 그 4명의 추억을 함께한 친구들의 20대와 5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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