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 첫 겨울캠핑과 서머싯 몸
여행을 다니다 보면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물이나 인공물보다도, 아름다운 자연경관 앞에서 더욱 압도되곤 했다. 입이 떡 벌어지는 풍경을 마주하면 벅차오르기도 했지만, 동시에 내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이 얼마나 감사한지 또렷해지곤 했다.
감사하게도 우리 가족의 첫겨울 캠핑이 그랬다. 비가 조금 오겠거니 하고 출발했는데, 이렇게 예쁜 눈이 펑펑 내릴 줄이야. 다음 날 맑게 개인 하늘 아래에서 잊을 수 없는 설경을 맞이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모든 순간이 벅찼다. 그럼에도 해야 할 일들은 계속 있었기에 자주 있는 일인 양 태연하게 시간을 보냈지만, 사랑하는 가족들이 이렇게 건강한 모습으로 내 곁에 존재하는데, 내가 무얼 더 바랄 수 있을까.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그런 결론에 이르렀다.
잘 살아보겠다고 욕심을 부리던 때도 있었고, 매사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아등바등하며 살기도 했지만, 어릴 때부터 꿈꿔왔던 가장 행복한 장면은, 그저 이런 장면들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러니 감사하다는 마음 밖에는.
겨울 캠핑을 떠나기 전에는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를 읽고 있었고, 다녀온 뒤에는 『면도날』을 읽었다. 눈 덮인 풍경 앞에서의 나의 깨달음은, 두 작품이 끊임없이 묻고 있던 꿈과 이상, 그리고 삶의 의미에 대한 질문과 묘하게 맞닿아 있었다.
나는 그동안 현실을 내려놓지 못한 채, 현실 안에 안주하면서도 그 안에서만 꿈을 좇고 있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겨울 캠핑의 아름다운 설경 앞에서 사랑하는 가족과 나누는 이 행복이, 어쩌면 내게는 『달과 6펜스』에서 말하는 최종 목표이자 이상향, ‘달’이 아니었을까.
『면도날』에서 래리가 끝내 찾고자 했던 삶의 의미 역시, 나에게는 이 정도의 삶과 행복이면 내가 살아가는 이유로 충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갑자기 확 소시민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책 속의 문장들이 경험을 통해 다시 읽히는 느낌이 들어 오래 여운이 남았다.
1박 2일, 짧았지만 강렬했던 우리 가족 첫 겨울캠핑을 기록하며
여기라고 슬픔과 두려움이 없을까. 하지만 그 느낌은 금방 사라져 버리고 오히려 현재의 즐거움만이 더 뚜렷이 느껴질 뿐이다. 마치 사람들이 광대의 재담에 웃음을 터뜨릴 때, 광대의 눈에 어리는 슬픔이 그러하듯. 다들 한바탕 웃음을 나눌 때 외로움이 더 사무치는 광대는 그 때문에 더욱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재담에 신명을 돋운다. (서머싯 몸, 달과 6펜스 중에서)
푸른 초원이 얼마나 가슴을 벅차게 하는지, 잎은 아직 돋아나지 않았지만 가지가 옅은 초록색 안개에 덮여 있는 듯한 나무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때 처음 알았어요. (서머싯 몸, 면도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