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애월읍 고내리 다락쉼터
장소 : 제주시 애월읍 고내리(제주 올레길 16코스)
한 해가 저물어 간다.
마치 하루의 끝자락에서 붉은 태양이 아무 말 없이 수평선 너머로 천천히 가라앉듯이, 시간은 소리 없이 뒤로 물러난다.
새해 첫날이 되면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각자의 다짐을 꺼내 놓는다.
올해는 꼭 이것만은 해내겠다고, 어떤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겠다고 굳게 마음먹는다.
처음 1~2주일은 의욕이 넘친다. 계획을 실천하는 나 자신이 대견하게 느껴지고, 변화가 시작된 것만 같다.
하지만 1월 중순이 가까워질수록 작은 이유들이 하나둘 고개를 든다.
비가 온다, 눈이 내린다, 오늘은 유난히 피곤하다.
그렇게 하루를 미루고, 또 하루를 넘기다 보면 실천하지 않는 시간이 어느새 일상이 되어 버린다.
그리고 다시 12월이 찾아온다.
올해 내가 무엇을 바랐는지, 무엇을 이루고 싶었는지조차 흐릿해진다.
우연히 연초에 적어 두었던 목록을 마주하고서야 생각한다.
‘내가 이 모든 걸 하려고 했었나. 너무 많은 것을 욕심냈구나.’
후회는 늘 그렇게 늦게 찾아온다.
그러나 모두가 같은 속도로 한 해를 보낸 것은 아니다.
어떤 이에게는 고개를 들어 주변을 돌아볼 틈도 없이 숨 가쁘게 달려온 시간이라, 붙잡아 보기도 전에 한 해가 쏜살같이 지나가 버렸을 것이다.
또 어떤 이에게는 하루하루가 견디기 힘든 아픔과의 싸움이어서, 시계 초침 소리마저 지긋지긋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시간의 흐름은 각자가 놓인 자리와 그 시간을 바라보는 마음의 온도에 따라 다르게 느껴진다.
그래도 그 다름과는 상관없이,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한 해’라는 이름으로 조용히 저물어 간다.
아무 말도 남기지 않은 채, 마치 해가 지듯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