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대륙, 6번째 나라, 2번째 도시
전날 겨울 재킷을 입어야 할 정도로 썰렁했던 날씨가 거짓말같이 느껴질 정도로 날이 따뜻해졌다. 재킷 없이 니트만 입어도 충분할 정도로 따뜻하고 해가 잘 드는 날씨에 기분 좋게 외출 준비를 하고 우리 숙소가 있는 피라마을을 돌아보기로 했다.
피라마을은 산토리니에서 가장 번화한 마을이다. 먹거리가 다양하고 성수기에는 클럽, 바 등도 늦게까지 운영하며 아침부터 밤까지 거리도 밝고 사람이 넘치는 마을이라 들었다. 세계 여러 도시의 번화도를 확인할 수 있다는 맥도날드도 있고, 보통의 유럽 휴양지나 소도시는 늦게까지 영업을 안 하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피라마을엔 우리가 갔던 비수기에도 24시간 영업하는 빵집이 있어서 신기했다.
피라마을을 구경하기 위해서 다른 모든 곳을 구경하기 위한 길목이자 마을 중심에 위치한 중앙광장(Central Square)을 향했다.
각종 상점과 식당이 모여있는 이곳에는 수블라키와 기로스를 판매하는 음식점이 많아서 해안가 쪽의 비싼 음식점에서 지중해식 해산물 요리를 매끼 먹는 게 부담스러울 때 좋은 선택지가 되어준다. 그래서인지 마을 곳곳에 흩어져서 구경하던 사람들이 식사 때만 되면 다시 중앙광장 쪽으로 돌아와서 인기 기로스집을 포함한 음식점 앞에 줄을 서고, 식당 앞에 내놓은 스탠딩 야외 테이블이 모두 꽉 찼다. 우리도 배낭여행객으로 부담스러울 수 있던 휴양지에서의 식사를 이 음식점들 덕분에 비교적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었다.
중앙광장을 지나서 골목 사이사이 기념품상점들과 핸드메이드 소품들을 구경하면서 해안가에 도착하자마자 산토리니 하면 떠오르는 하얀색 집들이 모여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쨍하게 파란 지중해와 새하얀 집들이 대비되어 더 아름다웠고 그 후부터는 사진으로 추억을 남기기 위해 계속 카메라를 들었다.
관광객들이 많아서 건물들이 새하얀 벽을 유지하는 게 어려울 거 같은데 더러운 걸 그대로 방치하면 비싼 벌금을 부과하기도 하고, 이 벽 자체의 아름다움이 하나의 관광상품인 만큼 관광업에 종사하는 대부분의 산토리니 주민들도 적극적으로 관리를 해서 잘 유지되고 있다고 한다.
하얀 건물들 중간중간 그리스 정교회의 예배당인 블루돔이 포인트가 되고 더 예뻐 보이다 보니 그런 곳에서는 특히나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 사진을 찍곤 했다.
보통 이렇게 사람들이 몰려서 사진을 찍는 곳에서는 다른 사람들도 배려해서 짧게 찍고 자리를 비켜주곤 하는데 단체 관광을 온듯한 중국인 관광객들이 꽤 오랫동안 사진을 찍었음에도 계속 좋은 포인트 자리를 다른 여행객들에게 내어주지 않았다.
나는 그런 그들이 얄미워 옆에서 경쟁하듯이 사진 찍을 자리를 확보하려 했는데 남편은 꼭 여기서 사진을 찍어야 할 필요가 있냐고 스트레스받지 말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자고 했다. 내가 그 말을 무시하고 버티고 있으니 남편이 짜증을 내기 시작했고 난 그런 남편의 짜증에 왜 짜증이냐며 화를 내고 결국 둘이 다투고 말았다.
더 구경할 기분도 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기도 싫어서 둘 다 입을 꾹 다문 채로 숙소로 돌아갔다. 서로 기분이 상해 있으니 돌아가는 길의 아름다운 풍경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숙소 우리 방에 돌아가서 다시 싸움을 하려니 이 아름다운 산토리니에 와서 싸우게 된 상황에 화나는 마음보다 속상한 마음이 점점 더 커졌다.
나중에 다시 가서 찍었어도 되는 걸 다른 관광객이 얄밉다고 버티고 있었던 것에 대한 후회가 남았고 남편도 그런 내 마음을 이해했어도 되는데 순간 짜증을 냈던 거에 대해서 후회를 했다. 서로에 대한 미안함에 말투가 부드러워졌고 사랑하는 사람과 좋은 추억을 남기기에도 아까운 시간에 서로 싸우지 말자며 화해했다.
화해하고 편안해진 마음으로 다시 해안가로 향했고 우리가 싸우게 됐던 포토 포인트에 단체 여행객은 이미 사라져 남편은 평소보다 더 열과 성의를 다해서 사진을 찍어줬다. 아름다운 풍경을 계속 보면서 돌아다니니 지형상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해야 하는 것이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다.
항구 쪽으로 내려가는 길을 구경할 때 유일하게 힘들었는데 이곳의 또 다른 관광상품인 당나귀 타기 때문에 당나귀가 지나간 자리에 똥이 너무 많아서였다. 곡예하듯이 똥을 피하며 걷다 보니 다리에 힘이 더 들어갔고 바닥을 살펴야 하니 풍경을 바라볼 수 없어서 항구 쪽은 한번 내려갔다가 올라온 거에 만족하기로 했다.
저녁이 되면서 새하얀 벽으로 된 집에서 하나둘 켜지는 노란색 불빛으로 이룬 야경까지 잘 감상한 후 피라마을에서의 관광을 마쳤다.